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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용의 軍界一學]'초법' 군사경찰 정보활동…'불법사찰' 정당화?

김관용 기자I 2020.12.15 06:30:00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군사경찰(옛 헌병)은 군 질서 유지와 안전, 범죄 예방 활동 등 군 경찰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군 경찰 직무에 대한 근거 법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문화됐거나 상위 법률이 없어 ‘내규’를 통해 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번 21대 첫 정기국회에서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이 처리됐습니다. 군 수사권 행사와 교통단속 및 범죄예방활동 등이 법률에 근거해야 법치주의 원칙에 맞고, 그래야 장병의 인권과 기본권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게 법률안 제정 취지입니다.

법령에만 존재하는 ‘군사경찰사령부’

그간 군사경찰 관련 법령은 대통령령인 군사경찰령이 유일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이 규정마저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5조에서 ‘군사경찰에 관한 사무를 통할하기 위해 국방부 본부에 군사경찰사령부를 둔다’고 돼 있지만, 이같은 사령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군사경찰사령부의 조직과 사무범위에 대해선 또 국방부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없는 부대이니 이같은 규정 역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해당 군사경찰령은 사령부 직원과 사령관 등의 직무를 규정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사령부는 국방부 직할부대로 존재하는 국방부조사본부와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조사본부의 임무 범위는 국방부와 그 직할부대 및 직할기관에 소속된 군인 및 군무원과 국방부장관 소속 청(방위사업청·병무청 등)에 소속된 군인에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군사경찰사령부 창설은 군사경찰의 꿈이기도 합니다. 헌병에서 이름을 바꾼 군사경찰은 중앙 사령부를 창설하고 전 제대에 그 예하 조직을 만드는걸 검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행 군사경찰령은 이같은 구상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제정한 ‘헌병령’에서 군사경찰로 이름만 바꾼 수준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인 지난 6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모티브로 제작된 군사경찰(옛 헌병) 조형물이 자유의 다리 입구를 지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상위법에도 없는 ‘정보활동’

특히 군사경찰은 법률이나 훈령 등 상위법이 존재하지 않다보니 자체 내규를 통해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이른바 ‘정보활동’이 대표적입니다.

육군규정(육규)140의 군사경찰정보활동 관련 규정에 따르면 그 근거로 군사법원법 제228조와 부대관리훈령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법 228조는 ‘군검사와 군사법경찰관은 범죄 혐의가 있다고 생각될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 및 증거를 수사하여야 한다’고만 돼 있습니다. 수사 이전의 정보활동을 보장하지는 않고 있는 것입니다. 부대관리훈령에도 이같은 정보활동을 적시한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군사경찰은 육규140 제6장에서 정한 △군사경찰정보활동의 목적 △군사경찰정보의 수집 △군사경찰정보요구 △군사경찰정보 작성 및 보고 △군사경찰정보 분석, 평가 및 포상 △사실의 확인 △군사경찰정보의 활용 △군사경찰정보 관리 등을 통해 광범위한 정보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 조항을 들여다보면 군사경찰은 범죄, 비리, 부조리 등을 사전에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무분별하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범죄정보·사업정보·안전정보·전술정보 등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그 밖의 육군 운영 및 부대지휘·관리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병영 저변의 특이경향 관련 각급 제대 및 육군본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도 규정하고 있어 사실상 전방위적인 정보 수집 할동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대상 역시 명확치 않아 민간인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수집 정보, 병과장 라인에만 보고

이같이 수집된 정보를 보고받는 주체는 참모총장이나 국방부 장관이 아닌 군사경찰 병과장인 육군본부 군사경찰실장입니다. 정보의 활용권자 역시 군사경찰실장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중요 정보의 경우 총장을 통해 장관에게도 보고토록 하고 있지만 안하면 그만입니다. 국방부 장관의 직접 지휘를 받는 국방부 조사본부장 역시 각 군의 군기강 확립 및 사고예방활동과 관련한 군사경찰 업무를 지도·감독할 권한만 있을 뿐입니다.

공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군 군사경찰도 내규를 통해 ‘범죄정보 수집활동’을 하는데, 이 역시 수집 범위가 ‘기타 범죄 및 비위로 발전될 수 있는 사항’까지로 돼 있습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셈입니다. 이같이 수집된 정보는 역시 공군참모총장이 아닌 공군본부 군사경찰실장에게 보고됩니다.

얼마전 예하 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장이 자신의 부대 지휘관인 단장과 당시 복무했던 한 국회의원 아들간 얘기를 자체 보고서로 작성한게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은 군사경찰 라인으로만 보고됐다는게 공군 측 얘기입니다. 광범위한 규정에 근거한 군사경찰의 정보 수집 활동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사진=연합뉴스]
시행령서 직무범위 명확히 해야

상위법에 근거하지 않을 뿐더러 수집 범위 역시 불명확한 이같은 군사경찰의 정보 활동은 불법적인 정보수집이나 개인 사찰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군사경찰 개인의 악감정이나 지휘관 의도만으로도 한 개인의 인권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과거 국군기무사령부가 내부 훈령을 통해 무분별한 정보 수집 활동을 벌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른바 3대 사건(세월호 유가족 사찰·사이버 댓글 사건·계엄령 문건 작성)을 계기로 새롭게 만들어진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부대 운영훈령에 기무사 시절 정보 수집 활동 같은 규정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같은 군사경찰 정보활동 권한은 지휘권을 흔드는 도구로 악용될 소지도 다분합니다. 각 부대 군사경찰이 수집한 정보들이 자신의 사단장이나 군단장 등 지휘관을 건너뛰고 육군본부 군사경찰실장에게 집중될 경우, 또 군사경찰 병과원들 끼리의 유착이 강화 될수록 이들 지휘관의 ‘영’(令)은 설 수가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각 부대 군사경찰이 자기 부대 지휘관의 비위 관련 정보를 입수할 경우 이를 다른데서 듣고 온 해당 지휘관은 ‘상관모욕’이나 ‘군기문란’ 등을 적용해 군사경찰에 불이익을 가하기도 합니다. 군사경찰의 정보활동이 투명화·명확화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번에 제정된 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안은 군사경찰 직무수행의 기본 원칙으로 ‘군사경찰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남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군사경찰은 이 법에서 정하는 정당한 직무범위를 벗어나 정보를 수집하거나 활용하여서는 안된다’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법률안 역시 군사경찰의 직무범위와 지휘·감독 관련 규정에서 ‘내란죄’나 ‘반란죄’ 등과 같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나 국가정보원이 수사하는 죄 이외의 죄에 대해서는 정보수집·예방·제지 및 수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불법 정보 수집이나 개인 사찰 등이 가능하다고 해석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단, ‘군사경찰의 직무범위와 지휘·감독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어 시행령 제정에 관심이 쏠립니다. 박경수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이 차질없이 마련돼 그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 사법제도 개혁안 중 군사경찰 분야에 매우 중요한 성과인 만큼 허점이 없도록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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