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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육아]"노산이라 위험해요"…30종 산전검사에 우는 예비엄마

전상희 기자I 2016.09.02 07:07:04

고령임신·기형아 출산 증가에 산전검사 수요 급증
병원마다 권하는 산전검사 항목 비용 각기 달라
"표준가격 정보와 구체적 가이드라인 등 필요해"

이데일리는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와 함께 ‘적게 쓰고 크게 키우는 행복한 육아’라는 주제 아래 연속 기획을 게재합니다. 해마다 눈덩이처럼 커지는 육아 부담을 줄여 아이를 키우는 일이 행복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합니다. ‘작은육아’ 기획시리즈에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전상희 기자] “기본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와도 자꾸 추가 검사를 권해요. ‘노산이니 위험하다’며 이름 모를 비싼 검사를 권하는데 아이 건강 문젠데 안 할 순 없잖아요.” (임산부 지모(37)씨)

갓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일일이 확인하며 안도하던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예비 엄마들은 갑상선 기능검사·냉 검사·면역혈청검사·자궁경부암 검사·혈액검사·초음파 검사·흉부 X레이 검사 등 20가지가 넘는 산전검사를 통해 태아의 건강상태를 속속들이 파악한다.

최근에는 4D 정밀입체 색채 초음파 검사와 같은 최첨단 기술 덕에 뱃속 아이의 얼굴 이목구비까지 확인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임신부의 불안감을 부추겨 고가의 불필요한 검사까지 권하기도 해 예비 부모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적정한 산전검사 항목과 가격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가 턱없이 부족해 경험없는 임신부들이 불필요한 검사까지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정부나 관계기관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전상희 기자)


◇ 기형아 출산 증가에 산전검사 수요 급증

만혼에 이은 노산 가구가 많아진 탓에 고위험·고령 출산이 늘어나면서 산전검사 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은 32.23세로 전년보다 0.19세 상승하며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체 임산부 가운데 35세이상 고령 임산부의 비율은 23.8%로 10년 전인 2005년 10.5%보다 13.3%나 높다. 의료계에서는 35세 이상 출산은 노산(老産)으로 분류한다. 노산은 불임, 난임, 임신 합병증 등의 위험성이 높아진다.

대기오염·환경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기형아 출산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5월 임종한 인하대 교수팀이 서울·부산 등 광역시급 이상 7개 도시에서 출생한 40만3250명의 건강보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09~2010년 국내에서 태어난 신생아 100명 가운데 약 5.5명 정도가 기형아인 것으로 조사됐다. 1993~1994년 100명당 약 3.7명 정도였던 것에 비해 16년 새 약 49% 늘었다.

이처럼 출산에 따른 위험도가 높아지면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예비엄마들은 항목에 따라 몇천원에서 10만원이 넘는 각종 산전검사를 받는다. 일부 병원에서는 30가지가 넘는 산전검사를 패키지로 묶어 임산부들에게 권하기도 한다. 이런 패키지상품은 보통 20만~30만원대지만 비싼 경우 100만원에 달한다.

지난 2월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임산부 75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행 초음파의 비용이 비싸다고 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62%였다 . 그럼에도 전체 응답자의 93.4%가 ‘7번 이상의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고 답했다. ‘16번 이상 검사를 받았다’는 답변도 10.8%나 됐다.

첫 아이를 임신 중인 문모(29)씨는 의사의 권유로 수차례에 걸쳐 산전검사를 받았다. 일반초음파 검사와 정밀 초음파 검사를 받은 후, 기형아 여부를 판독할 수 있다는 말에 인터그래이티드(integrated) 검사도 두 차례나 받았다.

문씨는 “과도하게 많은 검사를 받은 건 아닌지 뒤늦게 후회했다”고 했다. 그는 “초음파검사 하나가 몇만원씩이어서 없는 살림에 부담이 됐다”며 “막상 여러 가지 검사를 받더라도 결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듣거나 치료·관리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 같은 검사라도 병원따라 비용 달라…보건소 활용해 절감

병원마다 권하는 산전검사는 비용뿐만 아니라 종류도 천차만별이다. 동일한 검사라도 병원에 따라 비용이 다르고 권하는 세부검사의 종류도 다르다.

생후 9개월 된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서소희(30)씨는 “출산을 앞두고 병원에서 몇몇 산전검사를 소개하긴 했지만 의사가 가족력이 없으면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몇 달 전 첫 아이를 출산한 김지현(31)씨는 “병원을 갈 때마다 등골이 휘는 기분이었다”며 “혹시 모른다며 다양한 검사를 권하는데 불안한 마음에 검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표준모자보건수첩을 배포해 산모들에게 권장하는 15가지의 산전검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장순남 보건복지부 출산정책과 사무관은 “임산부들이 소득수준이나 필요를 고려해 산전검사를 선택하고 있어 필수 항목을 지정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건소에서는 기본 항목에 한해 산전검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 혈압·체중 등 기본검사와 기형아 검사, 당뇨 검사 등도 가능하다. 다만 검사항목이 제한적이어서 저소득층 가구 등을 대상으로 무료 검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은희 서초구 모자보건팀장은 “임산부의 상태와 각 의사 소견에 따라 검사 항목이 매우 다양해 보건소에서 모든 검사를 제공할 순 없다”며 “기초적인 검사에 한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만큼 산전검사 비용이 부담스러운 산모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연구원은 “우리나라 임신·출산 분야는 블로그나 카페 등의 ‘카더라’ 정보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나 병원 등에서 나서 위원회 등을 구성하고, 산전검사 필수항목·선택항목 등 보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원은 이어 “산전검사 비용의 표준가격이나 적정가격대를 제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며 “항목이나 가격에 대한 공신력있는 정보를 제공한 후에, 급여항목 확대·고운맘카드·보건소 무료검사등 다양한 지원 방안을 활용해 검사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넓혀나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임신주수별 산전검사’ 정보 (출처=보건복지부 2015 모자보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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