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눈]중국판 땡전뉴스와 시 황제의 대관식

김인경 기자I 2018.03.21 08:03:40
[베이징= 이데일리 김인경 특파원] 아침마다 중국 뉴스와 신문을 보는 일을 하다 보면 ‘시진핑’이란 이름을 가장 먼저 보게 된다. 톱 뉴스는 일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대문짝만 한 사진을 게재돼 있다. 국영방송인 중앙(CC)TV나 신화통신, 인민일보 등을 보고 있다 보면 중국뉴스가 아니라 시 주석 뉴스란 생각도 든다. 1980년대 9시가 되자마자 “전두환 대통령께서는 오늘”이라는 말로 시작했다는 ‘땡전뉴스’가 이런 느낌 아닐까 싶다.

요즘은 더욱 심하다. 지난 11일 국가주석 임기 제한 조항을 삭제한 개헌이 이뤄진 후 중국 언론들은 대놓고 시 주석을 찬양하고 있다. 중국 민주주의는 서양과 다르고 중국의 발전을 위해선 시 주석 만한 인물이 없다는 게 이들 언론의 주장이다. 시진핑 집권 1기인 지난 5년간 중국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점을 강조하며 시 주석이 있다면 향후에도 이 같은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다른 서방 국가와 달리 거대한 점을 강조하며 “이 커다란 사회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굴기한 것은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라며 “그 비결은 공산당의 강한 영도를 늘 지지해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뿐만 아니다. 동영상이나 영화를 통해서도 시 주석 찬양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젊은 층이 모바일에 익숙한 것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중국 써우후 영상과 온라인매체 진르터우탸오엔 시 주석이 시골 마을을 방문하는 5분짜리 영상 ‘인민 영수’를 올렸다. 이어 이달 2일엔 시 주석이 집권한 이래 거둔 성과를 다큐멘터리로 담은 ‘대단한 우리나라’가 상영되기 시작했다. CCTV와 중국영화유한공사가 함께 만든 이 영화는 시 주석이 중국 발전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 중국이 세계 속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미국 이상의 초강대국이 되려면 더욱 강력한 1인 체제가 필요하다는 암시를 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선전과 홍보 때문인지 이곳에 사는 대다수의 중국인들은 장기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시 주석의 개헌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중국이 더 잘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지식인들이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는 반대 목소리가 슬금슬금 나오고 있다. 문화대혁명이란 고초를 직접 겪은 초로의 어른들은 중국의 변화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고 재기 발랄한 20대들은 웨이보 같은 SNS에 시 주석을 교황이나 람보로 합성하며 막무가내식 찬양을 비꼬고 있다. 시 주석을 닮은 곰돌이 푸가 꿀단지를 안고 있는 사진도 눈에 띈다. 중국 당국은 보는 족족 콘텐츠를 삭제하고 있지만 통제를 한다 해도 사람들의 생각까진 막을 수 없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미화하던 땡전뉴스는 1987년 6월 혁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독재와 억압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평범한 사람들이 임계점에 치닫자 광장으로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그들 덕분에 2018년 한국은 민주적인 정부에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시 주석으로 가득한 뉴스와 노골적인 1인 체제를 보며 중국 국민들 역시 우리의 30여년 전과 같은 생각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관식’이란 소리까지 나오던 20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폐막했다. 시 주석만을 위한 체제는 완성됐고 독재체제는 이전보다 노골적으로 그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 역시 과거의 우리처럼 어느 순간 변화의 물꼬를 틀 지도 모르는 일이다. 땡전뉴스 같은 중국의 체제 속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는 틈을 비집고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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