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저녁 6시께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총국마당 무료 급식소에서 포장된 짜장밥과 소고깃국을 받아든 노숙인 권모씨가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중단됐던 무료급식이 재개됐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영등포에서 종로까지 발걸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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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과 아름다운 동행, 사단법인 다나(다함께 나누는 세상) 등 3개 단체는 최근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멈췄던 무료 배식을 재개했다.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잠시 중단했었지만, 계속해서 무료배식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판단에 다시 재개한 것이다. 다만 도로가 좁아 밀집도가 높았던 기존 배식장소를 대신해 안전한 거리두기가 가능한 장소로 옮겼다.
오랜만의 무료 배식에 권씨뿐만 아니라 다른 노숙인들도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무료 배식을 받자마자 바로 옆 공원에서 저녁을 먹던 강모씨는 “바닥생활을 좀 오래 했는데 오늘 여기는 처음 오게 됐다”며 “이런 게 자주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다나의 이사장인 탄경 스님은 “작년 말에 코로나19가 한창 심해졌을 때는 한동안 (무료 배식을) 못했다”며 “오랜만에 여니까 사람들도 예전처럼 많이 오지 않았는데 소문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말했다. 실제 단체는 이날 코로나19 확산으로 무료배식을 중단하기 전과 같이 200인분가량을 준비했지만, 거의 5~6개월 만에 재개한데다 배식 장소를 옮긴 탓에 예전처럼 긴 줄이 늘어서진 않았다.
단체는 남은 수량은 모두 직접 돈의동 부근 쪽방촌 등에 거동이 불편하거나 무료 급식소 재개 소식을 듣지 못한 노인들을 위해서 배달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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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서 서울시 구청별로 무료 급식소 운영 중단을 조심스럽게 타진했었다. 수백명의 인원이 몰리는 무료 급식소는 밀접 접촉이 우려돼 집합금지 명령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골공원 뒤쪽 골목에 위치한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배식 방법을 바꿔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기존에는 실내에서 먹는 급식이었는데 야외에서 2m 간격으로 줄을 세워 놓고 일회용 포장 배식으로 변경한 것.
무료배식에 의지하고 있는 수백명의 노숙인과 노인들이 꼼짝없이 배를 곯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을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지난 25일 무료 배식 현장에서 만난 원각사 무료급식소 운영자인 손영화(65)씨는 “서울역이랑 청량리 무료급식소가 다 문을 닫아버리니까 (갈 데가 없던 노숙인들이) 여기로 왔는데 하루 최대 700명까지 찾아왔다”며 “요즘은 다른 무료 급식소도 문을 열고 있어서 다시 200~300인분 정도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대유행 했을 당시 급식소는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와 선입견을 피할 수 없었다. 한 봉사활동자는 “작년에는 사람들이 무료급식소만 오면 무조건 코로나 걸리는 줄 알고 눈치를 받았다”며 “무료 급식소 봉사자들은 배식 봉사활동을 주변 몰래었어야했다”고 당시 삭막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는 혹시라도 확진자가 생겨 급식이 중단될까 우려해 따로 마스크 2000~3000장을 사들여 탑골공원 노숙자들에게 배부하기도 했다.
이 무료급식소의 가장 중요한 운영 원칙은 이유를 막론하고 배식을 멈춰서는 안 되다는 것이다. 코로나보다 배고픔이 더 무섭다는 이유에서다. 손씨는 “우리가 무료배식을 않게 되면 굶어 죽거나 무서울 게 없는 사람들이라 어디 가서 절도를 하게 돼버릴까 걱정”이라며 “무료 급식소는 재정상태나 상황을 보면서 운영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