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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문화재 읽기]'이자놀음'으로 조선땅 빼앗은 일본

김은비 기자I 2021.01.11 06:00:00

조선인, 빌린 돈으로 비료 구매
사실상 원리금 상환 불가능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락

다우에 타로 가옥 정면 전경(사진=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자기네들(일본)은 싸게 은행 대출을 받아가지고 이자 놀음을 해 먹어. 예를 들어서 만원이면 만원 빚 얻어다가 빚을 줘 버리면 제일 비싼 이자가 오십 프로야. 그러니까 앉아서 그냥 착취해 먹는 거야, 한국사람들을 .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봄이 되면 먹을 것도 없으니깐 농사해서 양식 팔아먹고 살아야 되니깐 고리를 갖다가 쓰는 거야. 그렇게 착취를 해서 먹었다고.”(‘20세기 화호리의 경관과 기억’ 속 주민 구술 기록)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조선의 땅을 침탈했다는 구체적인 연구결과가 나왔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최근 전북 정읍 화호리에서 실시한 학술조사 결과를 담은 ‘일제강점기 농촌수탈의 기억 화호리Ⅰ’ 보고서를 발간했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식민지화하기 위해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필두로 농업 이민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해방 후 이에 대한 기록과 흔적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연구소 측은 “화호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그 실상을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해주고자 학술연구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화호리는 농업 이민 정책 초기 이주지로 선정됐던 지역이다. 당시 상당수 일본인이 화호리로 이주했고 대규모 농장이 개설됐다. 개간된 화호리의 많은 농지와 대지 소유권은 이들에게 갔다. 이 지역에는 일본인들이 거주했던 ‘적산가옥’ 문화재가 다수 남아있다. 이곳 대지주였던 다우에 타로가 살던 가옥과 구마모토 리헤이의 별장이었던 이영춘 가옥(전북유형문화재 제200호)이 대표적이다. 소작농으로 시작했던 타로는 화호리 일대에서 225정보 토지와 500여 명의 소작농을 거느린 대지주로 변신했다. 리헤이는 1902년 교우의 농장 지배인 자격으로 조선에 진출해 이듬해 교우 농장에서 독립 후 화호리 두 지역에 농장을 개설했다. 30여년 간 3500정보를 소유한 ‘왕국’을 형성했다.

당시 일본인들이 이용한 토지 매수 방법은 현금을 통한 직접 구입과 토지를 저당으로 잡은 고리대금업 두 가지였다. 현금을 통한 구입은 비교적 큰 자본이 필요했다. 반면 고리대금업은 달랐다. 일본인에게 돈을 빌린 조선인들 대다수는 매일 끼니 해결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사실상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했다. 저당물인 토지를 결국은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하지연 이화사학연구소는 연구원은 “개항장, 대도시는 물론 지방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일본 거류민의 80~90%가 대금업을 했다고 할 정도로 성행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자영농이었던 토착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했다. 식민지 조선 사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토지로부터 얻는 수확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고, 삶의 터전도 농촌이었다. 토지로부터 유리될 경우 당장의 생존문제에 봉착해야 했던 식민지 조선의 농민들은 더욱 강하게 식민지 거대지주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농장 소작조건은 1937년 작성된 ‘소작계약증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소작계약증서’에는 소작 계약 기간 3년에 풍흉에 관계없이 지주와 소작인이 소작계약 체결 때 매년 갚기로 정한 일정 소작료인 정조액을 완납하는 것으로 명시했다. 이때 소작미의 품질, 용량, 포장을 철저하게 규정했다. 소작인들은 반드시 기한 내에 회사가 지정한 개량종으로 건조와 조제를 완전히 마친 후 새 가마니에 쌀 91근씩 넣고, 새끼줄로 감아 완납해야 했다. 소작미의 품질이 불량하거나 건조·조제 과정이 불충분할 경우 할증미를 더 내야 했다. 기한을 어기면 1일당 연체료 0.2%가 가산됐다.

이 연구원은 “일본인은 당시 조선에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토지를 개량하고, 개량 농법과 우량종자를 도입, 개량농기구와 비료의 장려 등으로 조선 농업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식민지 약탈경제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구마모토 리헤이(사진=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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