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김·탁·채의 상속과 세금]할아버지 채무가 내게 상속?

강경래 기자I 2020.05.10 10:18:16
[법무법인 태승 김(탁)민정 변호사] 이상속씨는 삼대독자다. 이상속씨의 할아버지는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 운영하던 사업체가 도산했고 이후 20년 넘게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사망했다. 가족들 역시 할아버지의 빚 때문에 힘들게 살아온 터라 할아버지가 사망한 직후 이상속씨의 할머니와 아버지 모두 상속포기를 마쳤다.

그런데 올해 이상속씨는 한 금융기관으로부터 할아버지 상속인으로서 2억원의 채무를 변제해야 한다는 독촉을 받았다. 이상속씨가 이를 갚지 않으면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보증금과 급여통장을 압류할 수 있다는 안내도 받았다.

할머니와 아버지 모두 상속포기를 했는데 왜 손자인 이상속씨에게 할아버지 채무가 상속됐을까? 이상속씨 가족은 상속개시 당시 이러한 상황을 막을 수 없었을까? 이상속씨가 2억원의 상속채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

◇ 상속포기 vs 한정승인

상속인은 피상속인의 사망과 동시에 법률상 당연히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모두 승계한다. 즉, 상속인은 부동산과 동산, 현금, 예금, 보험금, 주식 등 상속재산은 물론 계약상 지위, 금전채무, 보증채무 등 상속채무도 한꺼번에 물려받는다. 상속재산이 상속채무보다 크다면 상속세를 부담하는 외에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상속인은 피상속인이 갚지 못한 채무만을 떠안게 되므로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때 상속인은 민법 제1019조의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제도를 통해 상속채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상속인은 상속개시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3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 상속인이 상속포기를 신청하면 상속개시 당시에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므로 상속으로 이전되는 상속재산과 상속채무 모두에서 벗어난다. 다만, 후순위 상속인에게 상속재산과 함께 상속채무까지 넘어가게 될 것이다.

이와 달리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신청하게 되면 상속재산과 상속채무를 모두 승계받지만 상속재산의 한도에서만 상속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진다. 즉, 한정승인을 신청한 상속인의 경우 상속재산만으로 갚지 못한 상속채무가 있더라도 그 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후순위 상속권자는 상속인이 아니므로 상속재산은 물론 상속채무도 물려받지 않는다.

◇ 1순위 자녀와 동순위 배우자가 모두 상속을 포기한 경우 상속채무의 귀속

민법상 상속순위를 보면 △1순위 직계비속 △2순위 직계존속 △3순위 형제자매 △4순위 4촌이내 방계혈족 순이다. 이때 1순위 직계비속에는 피상속인의 자녀뿐 아니라 손자녀가 포함되고, 2순위 직계존속에도 피상속인의 부모뿐 아니라 조부모가 포함된다. 배우자는 1순위 직계비속 (손)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손)자녀와 함께 상속인이 되고, (손)자녀가 없는 경우에는 2순위 직계존속 (조)부모와 함께 상속인이 되며, 1순위와 2순위 상속인이 모두 없다면 단독으로 상속인이 된다.

따라서 이상속씨 가족과 같이 1순위 직계비속인 자녀와 동순위 배우자가 상속을 포기한 경우라 하더라도 손자인 이상속씨가 존재하므로, 이상속씨는 1순위 직계비속으로서 상속인이 돼 상속채무를 모두 물려받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할아버지가 사망한 직후에 자녀와 배우자, 손자녀 모두 한꺼번에 상속포기를 신청했다면, 직계가족은 상속채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나, 상속채무는 2순위 직계존속에게 상속이 되고, 직계존속이 없다면 3순위 형제자매에게, 형제자매가 없다면 4순위 4촌 이내 방계혈족 즉, 조카나 사촌 형제자매에게까지 채무가 상속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처럼 상속채무가 계속 후순위 상속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1순위 직계비속 중 누군가 한정승인을 신청하고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상속채무를 변제할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때 나머지 1순위 직계비속과 동순위 배우자 모두 상속포기를 신청해야 할 것이다.

◇ 상속채무를 독촉받은 손자녀의 대처법

이상속씨는 금융기관으로부터 2억원의 상속채무를 변제하라는 독촉을 받고 3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해야 한다. 다만, 이상속씨가 2억원 채무를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이 이미 할아버지가 사망한 지 3개월이 넘은 때여서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 신청기간에 대해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은 상속개시 원인이 되는 사실을 알고 이로써 자기가 상속인이 됐음을 안 날을 의미한다고 봐 일반인 입장에서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자녀가 상속을 포기한 결과 손자녀 스스로 상속인이 됐다는 사실까지 알기 어려운 특별한 사정을 인정한다. 따라서 이상속씨는 상속채무를 독촉받아 상속 사실을 알게 된 날로부터 3월 이내라면 충분히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이 가능할 것이다.

만일 이상속씨가 2억원 상속채무를 상속받았다는 사실을 알고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하는 사실을 중대한 과실 없이 알지 못해 3개월 이내에 상속포기 또는 한정승인을 신청하지 못했다면 그 사실을 안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민법 1019조 제3항에 따라 특별한정승인을 신청할 수 있다.

이상속씨 가족처럼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해 상속 자체가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라면, 상속개시 이후 3개월 이내 자녀와 배우자 및 손자녀까지 1순위 상속권자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한정승인 및 상속포기를 신청해 상속재산 범위 내에서 상속채무를 변제하는 방법으로 피상속인의 직계가족은 물론 후순위 상속인들에게 상속채무의 짐을 지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