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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 정치논리로 흔들리는 질병연구

e뉴스팀 기자I 2020.07.23 07:46:54
[임병식 국회입법정책연구회 상임 부회장] 가끔 본말이 뒤집히는 엉뚱한 경우를 접한다.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이하 인수공) 통합 논란이 그렇다. 정부는 코로나19 후속 대책으로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여기에 전북대 인수공을 통합하는 논의가 불거져 불필요한 논쟁을 촉발하고 있다. 먼저 개념부터 확실히 해두자. 바이러스가 사람을 공격하면 감염병, 동물이면 전염병이다. 그러니 국립‘감염병’연구소와 전북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는 연구대상이 전혀 다르다. 통합한다면 이런 특성을 무시한 졸속 행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전북대 인수공은 사람과 동물 모두를 감염시키는 바이러스와 재난형 동물 질병을 연구하는 국내 유일한 기관이다. 그렇다면 방향은 명확하다. 통합이 아니라 전문화, 특성화에 있다. 인체 감염병과 동물 전염병 연구기관끼리 경쟁을 통한 시너지가 답이다. 국내 수의학계는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통합될 경우 사람 연구에만 매몰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동물 바이러스 연구가 선행되지 안 되면 인체 감염병은 구멍 뚫린다. 조류독감, 구제역, 블루셀라 등 재난형 동물 질병도 반복될 우려가 높다.

논란은 송하진 전북지사가 불을 댕겼다. 송 지사는 지난 5월, 교육부 산하 인수공을 복지부 국립감염병연구소로 이관하는 대신 분소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이를 받아들여 통합을 진행 중이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인 전북대학교 입장은 무시됐다. 통합은 중앙집권적이며, 치적을 염두에 둔 정치논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점에서 우려된다. 국가질병연구 체계가 자칫 정치논리로 결정될 위기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인수공 논란은 두 가지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태조 이성계 어진 반환과 LH공사 통합 논란이다. 태조 어진 반환은 중앙집권적 행태를 보여준 좋은 사례다. 문화재청은 2005년 9월, 서울 고궁박물관 전시를 목적으로 전주경기전에 있던 태조 어진을 임대했다. 그러나 전시가 끝난 뒤에도 돌려주지 않았다. 전주경기전 시설이 열악해 보관할 여력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3년 만에 반환했지만 그 동안 전주시와 마찰을 빚었다.

문화재는 제자리 원칙이다. 태조 어진은 당연히 전주경기전에 있어야 의미 있다. 그런데 문화재청은 시설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서울 고궁박물관을 고집했다. 전주경기전도 고궁박물관처럼 시설을 갖추면 해결되는 문제였다. 서울 중심에 갇힌 사고가 문제였다. 결국 국비 43억 원을 들여 어진박물관을 건립, 전주에 봉안했다. 전북대 인수공도 마찬가지다. 예산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면 예산을 늘려 제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그런 생각은 뒤로한 채 통합에만 매몰돼 있으니 한심하다.

LH공사 통합 과정은 패배주의에 찌든 전북도 행정으로 거론된다. 노무현 정부는 토지공사는 전북 전주, 주택공사 경남 진주로 이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통합한 LH공사를 진주로 이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북지역 여론은 들끓었다. 당시 김완주 전북지사는 3대 7 분산 배치를 요구했다. 헤드쿼터 30%는 전주, 나머지 70%는 진주를 제시했다. 실소가 나왔다. 이발소 가르마도 아닌 다음에야 3대 7 발상은 황당했다. 결국 LH공사는 경남 진주, 국민연금공단은 전북 전주로 정리됐다. 소극적인 전북도 행정은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됐다.

전북대 인수공을 복지부로 이관하자는 송하진 전북지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전북대 인수공을 키우고 전문화, 특성화하는 게 맞다. 현재 인수공이 수주한 연구과제는 18개, 228억 원 규모에 달한다. 연구소 기능이 궤도에 올랐다는 반증이다. 더구나 인수공은 고위험 병원체를 연구에 필요한 차폐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런 장점을 내세워 국립전염병연구소 유치, 동물용 의약품효능안전성평가센터 이전, 인수공통감염병 대학원 설립 등 클러스터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전북도에 묻고 싶다. 언제까지 소극적이며 패배주의 행정으로 일관할 것인지. 청와대와 중앙정부 또한 통합이 능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길 촉구한다. 부처 간 이해관계를 조정할 책임이 있는 총리실에도 당부한다. 어떤 게 국가 질병 연구에 효율적인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 만일 정치논리로 국가 질병연구 체계가 결정된다면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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