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윤정희 '성년후견인' 논란…"상속 논의 미리미리 하는 게 좋아요"

공지유 기자I 2021.02.15 07:00:00

배우 '윤정희' 형제 갈등…'성년후견제도' 뭐길래
치매 노인 후견인 선임 제도…후견인이 재산 관리
국내 대부분 가족이 신청…'재산 다툼' 변질 우려
온전할 때 후견인 정하는 '임의후견' 대안 떠올라

[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는 배우 윤정희(77)씨의 후견인 자격을 놓고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75)씨와 윤씨의 형제들이 ‘성년후견’을 두고 갈등 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갈등의 원인이 된 ‘성년후견인’제도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윤씨의 사례처럼 의사결정이 어려운 노인의 후견인을 두고 가족 간 재산다툼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당사자가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을 정해 두는 임의후견제도를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 이동훈 기자)


치매 앓는 윤정희 ‘성년후견인’ 두고 형제·남편 갈등

윤정희씨 부부와 형제들의 갈등에 대한 논란은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윤씨의 형제자매가 쓴 글이 올라오면서 제기됐다. ‘외부와 단절된 채 하루하루 쓰러져가는 영화배우 윤정희를 구해 주세요’라는 게시글에서 청원인은 “윤정희는 남편과 별거 상태로 배우자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파리 외곽 한 아파트에서 홀로 알츠하이머와 당뇨로 투병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건우씨 측은 공연기획사 빈체로를 통해 “해당 내용은 거짓이며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지난 11일 파리에서 귀국해 “윤정희는 하루하루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다. 저희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성년후견인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빈체로에 따르면 윤정희가 2019년 5월 파리로 간 뒤 윤씨의 형제자매와 후견인 선임 및 방식에 관한 법정 분쟁을 벌였고, 지난해 11월 파리고등법원의 판결로 형제자매 측이 최종 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년후견인 제도란 질병과 장애, 노령 등에 따른 정신적 제약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성인을 위해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등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후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후견인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와 신상보호 등의 법률행위를 대리하거나 지원한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당초 민법상의 한정치산·금치산 제도가 폐지된 뒤 2013년 7월 1일 새롭게 도입됐다. 기존 금치산 제도가 재산관리에만 중점을 두고 ‘본인의 의사’에 대한 고려가 없었던 반면 성년후견인 제도는 재산관리뿐 아니라 신상보호를 지원하고, ‘본인의 의사와 잔존능력의 존중’을 우선으로 후견 범위를 개별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제도 도입 이후 고령 노인이 많아지며 신청 건수도 점점 증가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8년 성년후견 신청 건수는 5920건으로, 2014년(2006건) 대비 약 3배 가량 늘었다.

윤정희-백건우 부부.(사진=이데일리DB)


의사결정 못하는 노인 두고 가족이 신청…‘재산 다툼’ 우려

문제는 윤씨 경우처럼 피후견인이 치매 등 질병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후견인의 재산을 둘러싸고 가족 간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앞서 지난 2015년 롯데그룹 장남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영권 분쟁에서 신 회장 측은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정신 건강이 온전치 않다고 주장했고, 신동주 부회장 측은 건강하다고 반박했다. 경영권 분쟁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자 신 명예회장의 넷째 여동생 신정숙씨가 법원에 성년후견인 지정을 요청했다. 법원은 1년 6개월 이상 심리한 끝에 신격호 명예회장이 중증 치매 등으로 정상적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보고 2017년 6월 사단법인 선을 한정후견인으로 최종 확정했다.

지난해 7월에는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에 대해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성년후견을 신청하기도 했다. 동생인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을 넘긴 조 회장의 결정이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 이뤄진 것인지 판단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장남인 조현식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부회장도 지난해 10월 조양래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신청과 관련해 참가인 자격으로 의견서를 내며 형제간 대결 구도가 본격화했다.

“건강할 때 미리 후견인 지정”…대안으로 떠오르는 ‘임의후견’

이처럼 성년후견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재산 다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데는 이미 피후견인이 노령·질병 등으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 후에 후견인 결정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성년후견 제도는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크게 분류된다. 법정후견은 피후견인이 노령·질병 등으로 의사결정이 어려워진 이후에 후견인 신청을 하는 방식이고, 임의후견은 본인에게 정신질환이 발생하기 전 미리 계약을 통해 후견인과 후견업무를 정하는 방식이다.

본인이 의사결정이 가능할 때 자신의 후견인을 정할 수 있는 임의후견은 갈등 소지를 줄일 뿐 아니라 ‘본인의 의사를 가장 존중한다’는 성년후견제도의 취지와도 부합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는 임의후견 제도는 유명무실한 상태다. 2019년 개시된 3112건의 후견 중 임의후견은 단 4건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가족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당사자가 의사결정이 가능할 때 미리 후견인을 지정하는 임의후견 제도를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충희 한국성년후견지원본부 사무총장(법무사)은 “독일·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전 미리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 등의 이용이 활성화되어 있지만 국내에서는 임의후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아 제도 이용이 저조하다”며 “그렇다 보니 이미 당사자가 정신적으로 사무처리가 어려운 상태에서 후견신청이 이뤄지면서 가족 간 갈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사무총장은 또 “미래의 치매와 정신적 제약을 대비해 미리 자신의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방식은 본인의 의사를 가장 존중할 수 있는 제도”라며 “임의후견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제도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