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수단도 없는데"…'고용안정' 요구 불편한 한은

원다연 기자I 2020.12.19 10:00:00

한은 정채목표에 '고용안정' 추가 관련법안만 3건 나와
이주열 "취지 공감하지만…실제 운용에 적잖은 어려움"
제한된 수단에 목표는 상충·대표 지표 선정도 쉽지 않아

△한국은행 전경. (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고용안정 책무를 추가할 경우 통화정책의 실제 운용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7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국은행의 정책목표에 ‘고용안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것에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지난 10월 국정감사 이후 관련 법안이 쏟아지면서 한은이 기존 물가안정 및 금융안정 외에 고용안정도 명시적인 정책 목표에 추가해 보다 적극적으로 고용 문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관련 내용을 담은 한국은행법 개정안만 3건이 발의돼 있다. 이 총재는 이날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한국은행 설립의 궁극적 목적인 국가 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부합하는 최적의 방안이 모색되기를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바로 지난달말 진행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서도 해당 문제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불과 3주여만에 이 총재가 공식석상에서 먼저 이 문제를 다시 꺼내든 것은, 현실적으로 한은이 당장 고용안정까지 추진하기는 무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은은 무엇보다 기준금리라는 한가지 수단으로, 서로 상충하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고용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 총재는 “이 경우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워 자칫 중앙은행의 신뢰성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고용안정을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로 평가할지를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도 이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한은법 개정안이 최근 발의되면서 고용지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면서도 “고용지표와 경기 간 상관관계가 낮은 상황에서 어떤 지표를 기준으로 고용상황을 판단할지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이에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구조의 변화 속도가 빠르고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높으며 정부의 노동정책 등 비경기적 요인들도 노동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점, 실업률 지표 자체가 일시휴직자나 구직단념자의 변동 등 노동시장의 상황을 반영하는데 한계가 있는 점 등으로 인해 고용지표를 통화정책 판단지표로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같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지난 2018년 ‘고용과 거시경제의 역할: 고찰과 제언’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통화정책은 크게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제경제성장률을 대표적 지표로 물가와 산출이란 두가지 지표를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고용의 경우에는 대표적 지표를 설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고용을 고려한 통화정책을 시행하기 앞서 우리나라 고용상황을 대표하는 지수 선정과 장기균형수준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용 상황이 정부의 정책에 따라 크게 좌우되는 만큼 한은의 실질적인 대응 여지가 적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한 고위관계자는 “물가안정 목표도 정부 정책에 따라 변동하는 관리물가로 인해 달성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 고용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며 “자칫 한은이 정책목표만 늘어놓고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못한다는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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