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그땐 그랬지]소주병을 초록색으로 바꾼 장본인 ‘그린’

김무연 기자I 2021.04.24 11:00:00

진로이즈백 성공을 필두로 투명병 소주 출시 이어져
1920년대 시작된 희석식 소주, 원래 투명병에 팔아
1994년 두산의 ‘그린’, 초록병 마케팅으로 크게 히트
전국 소주 업체들, 그린 영향으로 초록병으로 통일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이 소주 시장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넓혀가고 있다. 지난 21일 하이트진로는 출시 2주년을 맞은 ‘진로이즈백’의 누적 판매량이 6억5000만 병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진로이즈백(사진=하이트진로)
진로이즈백은 지난해 코로나19에 따른 유흥 환경 축소에도 성장세를 유지했다. 지난해 진로 판매량은 2019년 대비 200% 증가했다. 하이트진로는 성공 요인으로 ‘두꺼비 캐릭터’를 이용한 MZ 세대 대상 마케팅을 꼽았다. 실제로 하이트진로의 두꺼비 캐릭터는 MZ세대에게 귀엽다는 호평 속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다만 근본적인 요인은 진로이즈백이 보유한 뉴트로 감성으로 분석된다. 기존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와 달리 하늘색 투명병을 사용한 진로이즈백은 젊은 세대에게는 다른 소주와는 차별적인 제품으로 인식됐다. 옅은 하늘색 색상도 좀 더 순하고 맑은 느낌을 줬다. 이른 바 ‘컬러 마케팅’의 성공이란 설명이다.

재밌는 점은 초록 소주병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하더러라도 초록색 병에 담긴 소주가 더욱 맑고 순한 이미지로 다가왔단 점이다. 결국 소주 시장의 주류였던 투명병은 자취를 감췄고 소주병은 전부 초록색으로 통일됐다. 불과 27년 전 이야기만 하더라도 하더라도 ‘초록색 소주병’은 가장 성공적인 컬러 마케팅의 예시였다.

강릉합동주조가 두산에 인수되고 이후 롯데주류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브랜드와 병의 변천사. 왼쪽부터 경월, 그린, 산, 처음처럼(사진=인터넷 커뮤니티)
우리가 즐기는 희석식 소주가 자리를 잡은 것은 일제 강점기부터다. 그전까진 증류식 소주가 대세였지만 값싼 희석식 소주 양조장이 조선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접어들면 증류식 소주 양조장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희석식 소주가 대세로 굳어지게 된다. 이후 대형 희석식 소주 양조장은 광복 후 불하되면서 우리나라 주류 기업 성장의 밑바탕이 됐다.

당시 소주는 투명병에 파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트렌드를 바꾼 것은 두산그룹이다. 두산그룹은 1993년 강원도 토착양조기업이었던 ‘강릉합동주조’를 인수하며 ‘두산경월’을 설립, 소주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1928년 출범한 강릉합동주조는 ‘경월소주’로 강원도 소주 시장에서 약 80%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었다.

두산경월은 강원도를 넘어 수도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1994년 경월을 리뉴얼한 새로운 소주 ‘그린’을 선보였다. 그린은 ‘초록색’(Green)이란 이름처럼 국내에선 처음으로 초록색 병에 담아 판매하기 시작했다. 투명병 일색이던 소주 시장에서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는 녹색병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린 소주의 점유율도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6년 각 도(道)마다 고유의 주류 회사를 키워주기 위해 한 도에 한 개 회사만 점유율 50% 보장했던 ‘자도주 보호법’이 폐지되면서 그린 소주는 본격적으로 수도권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두산이 인수할 당시만 하더라도 5%에 그쳤던 전국 소주 시장 점유율은 1997년 20%까지 늘며 1위인 진로를 바짝 추격했다.

소주 시장 1위였던 진로도 이런 그린의 기세에 1998년 ‘참이슬’ 브랜드를 새롭게 내고 초록병으로 바꿨다 .그린소주는 뉴 그린, 산이란 브랜드로 바뀌다 롯데가 두산주류를 인수하면서 ‘처음처럼’으로 브랜드 명을 바꾸면서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초록색 병은 단순히 성공적인 마케팅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공병 공동 사용이라는 문화도 이끌어 냈다. 주요 소주 업체들이 대부분 초록색 병을 사용하자 소주 업체들은 자율협약을 맺고 초록병을 사용하되 모양과 크기를 통일했다. 이예 따라 주요 업체들은 타사의 병이라도 세척한 뒤 라벨만 새롭게 붙이면 자사 소주병으로 활용할 수 있었고 병 생산비용도 절감됐다.

무학(사진=무학)
하지만 하늘색 투명병을 내세운 ‘진로이즈백’의 등장으로 시장은 공병 재사용 자율협약은 사실상 무너진 상황이다. 1위인 하이트진로의 ‘진로이즈백’이 투명병을 이용한 마케팅에 크게 성공하자 경쟁사들도 초록병 대신 투명병 사용에 나서고 있다.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하는 소주업체 무학은 투명한 병에 담긴 신제품 ‘무학’을 출시했고, 한라산 소주의 저도주 ‘한라산올래’를 대체한 신제품 ‘한라산17’, 대선주조의 ‘고급소주’가 투명한 병에 담겼다. 한 주류 업계 관계자는 “그린이나 진로이즈백처럼 병 마케팅이 크게 성공하면 경쟁사는 이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앞으로 병을 투명하게 바꾼 상품은 지속적으로 출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