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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제 살길 찾겠다고 소비자 외면한 은행

장순원 기자I 2020.12.29 06:00:00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연말 은행을 찾은 소비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공격적으로 돈을 빌려주던 은행권이 갑작스럽게 신용대출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은행을 믿고 자금계획을 세웠던 소비자들은 대출을 찾아 헤매는 난민 신세가 됐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대출규제가 혼란의 빌미가 됐다. 가계대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던 금융당국은 올 상반기부터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풀어줬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흔들리는 것을 막으려 시중에 유동성을 대거 공급했기 때문이다. 하반기 들어 주택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공모주 청약 열풍까지 불면서 가계대출 증가규모가 심상치 않게 흐르자, 다시 총량규제를 앞세워 은행권을 압박했다. 은행권에서 주택과 주식시장 거품을 키워놓고 왜 우리한테 책임을 떠넘기느냐는 볼멘소리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은행권이 당국 탓을 한다고 해도 대출중단 사태의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규제 고삐가 느슨해진 틈을 타 공격적인 대출 전략을 써왔다는 점에서다. 은행 입장에서는 대출 자산이 늘면 수익도 커진다. 특히 은행은 깐깐한 규제를 받는 주택담보대출 대신 신용대출을 20% 이상 늘려 수익을 보충해왔다. 그러다 규제 수위가 올라가며 위기감을 느끼자 대출 중단이라는 무책임한 대응을 한 것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 문제없이 대출을 받았던 고객도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과 같다. 실제 은행에서 돈을 구하지 못한 서민이나 자영업자들은 금리 부담이 훨씬 큰 저축은행이나 사금융 문을 두드리고 있다. 천수답(天水畓)식으로 대출로 수익을 내는 데몰두해 제때 브레이크 걸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이제 와서 당국의 규제만 탓하는 것은 은행 스스로 대출을 조절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금융은 신뢰로 먹고사는 산업이다. 은행은 최근 몇 년간 무분별하게 사모펀드를 팔았다가 고개를 숙여야 했다. 소비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 중단 같은 일마저 되풀이된다면, 그나마 남은 신뢰마저 갉아먹을 수밖에 없다. 대출 중단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가계대출 의존도를 낮추고 신용대출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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