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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시대]아픈 자식 누가돌보나‥80대 할머니의 고민

장순원 기자I 2020.09.19 09:00:00

안전한 재산지킴 버팀목 “성년후견지원신탁”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재산이라고는 지금 살고 있는 집 한 채뿐인데 내가 신탁을 활용할 일이 있을까?” “은행에서 나 같은 사람의 상담을 받아주기나 할까?”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ㅁ
아직은 신탁에 대해 상담해봤거나 직접 신탁계약을 체결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신탁은 (돈 없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신탁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다. 신탁은 어려운 개념도 아니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알고 보면 쉽고 유익한 제도인데도 말이다.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상당한 수준의 금융거래를 하는 시대에 은행을 직접 방문하는 이유는 좀 더 복합적인 거래나 전문적인 상담을 받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에게 ‘성년후견제도를 문의하기 위해 은행에 간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까? 아무리 은행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지만 변호사나 법무사 또는 사회복지사를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은행 등 금융기관을 방문해서 후견제도를 문의하고 자신에게 맞는 서비스를 찾아가는 풍경도 낯설지 않을 듯하다. 최근에는 고령화에 따라 성년후견업무를 전문으로 처리하는 전문후견인과 후견법인들도 등장하였다.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세무사 같은 전문후견인들은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쳐 가정법원에 후견인으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기관에서 운영하는 후견법인의 등장으로 좀 더 후견업무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여주고 있다.

우리보다 13년 앞서 성년후견제도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친인척이나 전문후견인 외에도 시민후견인 또는 공공후견인에 의한 후견 지원이 확산되고 있다. 우리도 곧 사회 전반에 이런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성년후견제도란? 법정후견과 임의후견

2013년 7월 1일 개정 민법에서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은 성년후견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제9조). 과거 한정치산. 금치산제도가 가진 한계를 넘어 본인의 의사와 현존 능력을 존중하는 것이성년후견제도의 기본이념으로, 법정후견과 임의후견으로 구분된다.

법정후견은 후견인 선임을 국가, 즉 가정법원에서 하는 것을 말한다.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가정법원에 후견인 선임을 요청하면 법원에서는 피후견인의 의사와 현존 능력 그리고 피후견인의 인지능력을 고려하여 후견업무의 범위를 정하는데 그 종류는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이 있다.

성년후견심판을 받게 되면 보통 성년후견인에게 포괄적인 법률대리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마치 부모와 같은 마음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며 피후견인의 신상과 재산에 관한 지원을 하게 된다. 가정법원에 성년후견을 신청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미성년후견인, 미성년후견감독인, 한정후견인, 한정후견감독인, 특정후견인, 특정후견감독인, 검사 외에도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청구할 수 있도록 확대하였다

한정후견은 가정법원에서 한정후견인의 대리권 또는 동의권의 범위를 정해놓는다는 점에서 성년후견인의 후견 범위와 차이가 있다. 특정후견은 특정한 사무나 기간에 한해 후견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상속, 부동산 임대차나 매매 등과 같은 특정한 업무를 수행할 때 특정후견을 활용할 수 있다.

임의후견은 피후견인 본인이 누군가와 후견계약을 맺어 자신의 후견을 설계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일명 후견계약이라 하고, 후견을 가정법원에서 결정해주는 법정후견제도와 달리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위한 후견인과 후견의 내용을 미리 정하여 이용하는 제도이다(‘민법’ 제959조의 14). 예를 들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거나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의 경우 지금 당장은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중증 상태에 이르기 전에 자신이 후견 받고자 하는 내용을 미리 계약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법인도 후견인이 될 수 있어 업무의 투명성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후견인의 수 역시 전문성과 그 역할에 따라 복수로 선임할 수 있게 하여 과거보다는 피후견인의 상황에 맞게 후견업무가 진행될 기반이 마련되었다.

후견과 신탁을 결합해 관리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다

80대 중반의 양금자 씨는 몇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후 발달장애인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3명의 딸 중 두 딸은 출가해 가정을 이루고 있고 발달장애인 딸은 양금자 씨가 돌보고 있었다. 남편이 사망하면서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와 현금을 상속받은 양금자 씨는 본인 사후에 발달장애인 딸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고민이 되어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를 찾아왔다. 현재는 자신이 딸을 돌보고 있어서 별 문제가 없지만, 자신이 치매에 걸리거나 죽고 난 뒤에는 누가 딸을 돌봐줄 수 있을지, 또 돈 관리가 제대로 안 되면 과연 장애가 있는 막내딸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등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우리는 양금자 씨에게 본인과 두 딸 중 한 명을 복수의 후견인으로 선임하고 장애인 딸의 재산은 신탁으로 관리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안타깝데도 양금자씨는 후견인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상속절차 후 다시 막내딸을 위한 후견인 선임절차가 진행되었다. 법원에서는 막내딸의 재산관리로 이견을 보인 언니들 대신에 후견법인을 후견인으로 선임하고, 동시에 장애인 동생 명의의 재산은 신탁을 통해 객관적으로 관리하도록 권유하였다.이에 선임된 후견인이 장애인 동생 명의 재산의 신탁관리를 위해 은행과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였다. 매월 지급방법과 지급액, 운용방법 및 보수 등에 대해 협의하고, 그 계약 내용을 가정법원에 알림으로써 후견과 재산관리를 위한 신탁제도가 결합되었다.

후견인이 피후견인의 신상보호와 재산관리 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사례에서는 후견인에게 전반적인 후견을 받되, 재산은 신탁으로 구분해서 관리함으로써 재산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법인 후견인은 전반적인 법률 대리 및 후견사무를 처리하고 신탁에서는 재산관리에 집중하는 효율적인 구조를 도출할 수 있었다.

금융재산뿐만 아니라 부동산관리도 신탁으로 해결하다

피성년후견인(후견을 받는 사람)의 재산은 현금뿐만 아니라 부동산, 주식, 전세보증금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피후견인의 주 재산이 부동산일 경우. 후견법인에서도 건물 관리 노하우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부동산 관련 많은 고민을 부동산관리신탁을 통해 해결해 갈 수 있다.

부동산관리신탁은 신탁계약을 통해 소유권이 수탁자(은행)에게 이전되면 수탁자인 은행은 건물의 대내외적 소유권자로서 임차인 관리, 시설관리, 임대료 수납 등 건물과 관련된 여러 일을 처리하게 된다. 피후견인의 법률대리인인 후견법인은 부동산 관리 업무를 신탁으로 처리하는 허가를 법원으로부터 받음으로써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또 법원에 주기적인 재산관리 현황을 보고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

후견과 신탁의 결합은 오히려 이미 치매가 중증으로 진행된 상태보다는 미리 미래를 대비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히 1인 가구 고령자의 경우라면 치매 등을 대비하여 미리 자신에게 적합한 후견인을 지정하여 계약하고 재산관리 방법도 신탁으로 정해 놓길 권유 드린다. 또 사후에는 사용하고 남는 재산은 원하는 사람이나 사회에 기부한다는 취지의 유언대용신탁을 함께 결합해 놓는다면 마음의 짐도 덜 수 있을 것이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고려대 대학원(가족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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