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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 작가 "꿋꿋한 정난주의 삶이 곧 조선이요, 대한민국"

이윤정 기자I 2018.12.04 07:59:03

장편소설 '난주' 출간
신유박해 견뎌낸 정난주 삶 그려내
제6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애절한 엄마이자 강직한 '인간 정난주' 보여주려"

김소윤 작가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정난주 마리아의 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은행나무).


[제주=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천주교 탄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관노비가 돼버린 여인의 삶을 그렸지만 종교소설을 쓰고자 한 건 아니었다. 나약하고 애절한 엄마이자 묵묵히 역경과 고난을 뚫고 나갔던 정난주의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난달 30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정난주 마리아의 묘. 장편소설 ‘난주’(은행나무)를 통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정난주 마리아의 삶을 복원한 김소윤(38) 작가가 묘 앞에 섰다. 김 작가는 “멀리 제주도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김 작가는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와 단편소설집 ‘밤의 나라’를 펴냈다. 현재 전주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난주’는 그가 처음으로 쓴 역사소설이다.

묘지를 탐방한 후 인근 카페에서 열린 ‘난주’ 출간기념 간담회에서 김 작가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있지 않다”며 “엄청난 신분차이를 극복하며 살아갔을 정난주의 삶을 소설로 써보고 싶었다”고 집필계기를 밝혔다.

△역사·종교·실존인물 담아내

정난주(1773~1838)는 정약현의 딸이자 정약용의 조카로,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많은 사람에게 ‘애기씨’라 불리며 어여쁨을 받았다. 그는 ‘신유박해’로 한순간 관노비가 되어 제주라는 변방으로 향한다. 남편 황사영은 천주교 부흥을 위한 백서를 북경의 주교에게 보내려다 발각돼 참형을 당했다. ‘난주’는 역사와 종교, 실존인물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개성있는 문체로 그려내며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김 작가는 “정난주라는 인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다”며 “하나하나가 가치있었을 주변인들의 삶도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난주는 돌이 지난 아들 경헌을 안고 유배지로 향하던 중 잠시 들른 추자도에 아이를 놓고 간다. 천한 노비 대신 평범한 양민으로 살기를 바라는 어미의 마음이었다. 헤어지기 전 난주는 아이를 꼬옥 안고 기도하듯 중얼거린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종국에는 흘러간다. 그늘도 음지도 해가 들면 다시 꽃을 피운다. 너는 그저 울고 떼쓰며 입고 먹으며 숱한 세월을 한날같이 아이로 자라거라.’ 김 작가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정난주가 아들을 떼어놓고 갈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며 “아이를 그리워하는 애절한 마음에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제주에서 정난주는 고단한 노동 속에서도 마마에 걸린 아이들을 돌보고, 구휼소를 차려 배고픈 사람들을 돌본다. 비록 노비였지만 ‘한양 할망’이라 불리며 제주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정난주가 고된 현실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건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다. 나약해지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이들 때문에 도저히 쓰러질 수 없었을거다.”

△제주도 방언 고증…“평범한 삶이 미래 만들어”

당시 제주의 풍습과 방언 등을 뛰어난 수준으로 고증하고 복원해냈다. 평소에도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김훈의 ‘흑산’이나 최명희의 ‘혼불’을 보며 역사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책과 논문 등을 최대한 많이 참고해서 역사적 배경은 사실적으로 반영하려 했다. 제주에 내려와서 그녀가 겪었을 고초와 주변 인물은 상상해서 썼다.”

소설의 원래 제목은 ‘잊혀진 꽃’이었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꽃들이 당시의 조선을,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는 생각에서였다. “시대는 조선이지만 서민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우리와 비슷하다. 평범한 하나하나의 삶이 모여 미래가 된다. 꼭 성공한 사람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는 작은 노력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나가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김소윤 작가가 11월 30일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열린 장편소설 ‘난주’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사진=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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