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추석 밥상에서 북한은 어떻게 비쳐질까

안승찬 기자I 2020.09.29 06:00:00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제 추석이다. 추석과 설은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자 정치권이 가장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명절이다. 설과 추석에는 먼 곳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여론의 흐름이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코로나 19 때문에 고향을 찾는 인파도 줄 것으로 예상돼 추석이 갖는 정치적 의미는 상대적으로 퇴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은 추석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분명 일정한 정치적 여론 형성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추석의 정치적 여론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건’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번 추석 밥상에 가장 많이 등장할 정치 관련 단어는 “피격”, “대단히 미안하다”, “시신 훼손” 그리고 “계몽군주”일 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얼마 전에 발생한, 북한에 의한 대한민국 공무원의 총살 사건과 관련된 단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을 북한이 총으로 쏴 사망케 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국방부 장관인 말한 것처럼, 총으로 쏴 사망케 한 이후 시신을 훼손했을 가능성 여부도 중요하다. 여기서 ‘가능성’이라고 언급한 이유는 가해자인 북한이 시신 훼손 가능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른바 사과문’을 통해, 자신들이 “불법 침입자”에게 총격을 가한 것은 맞지만, 시신이 유실돼, 부유물만 태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북한의 주장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부유물만 40분을 태웠다는 주장도 믿을 수 없고, 구명조끼를 입고 있던 우리 공무원의 시신이 총살 후 바다에서 유실됐다는 주장도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단히 미안하다”라고 말했으니 그걸로 된 걸까? 그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과란 ‘내가 잘못했으니 미안하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번 북한의 ‘이른바 사과문’을 보면, ‘우리는 규정과 절차대로 일을 처리했지만, 결과적으로 미안하게 됐다’는 식이다. 그러니까 우리 국민이 희생된 것은 미안하지만,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적반하장으로 우리 군과 해경의 시신 수색 작업에 대해 “자신들도 시신을 수색하고 있고, 시신을 발견하면 넘겨줄 것이니 우리 군과 해경은 북측 수역을 침범하지 말라. 북한 영해 침범은 절대로 간과할 수 없으며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경고문까지 발표했다. 그런데 우리 군과 해경은 현재 NLL 이남 지역에서만 시신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니까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 침범”이란, 1999년 9월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조선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넘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 이런 북한의 일련의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이 유사 사과문과 경고문을 보낸 이유도 “불법 침입”임을 강조하며, 그들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조선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우리와 북한의 경계임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결과적으로 “미안하게 됐다”고 말했으니, 자꾸 추가조사 혹은 공동조사 운운하지 말고 여기서 이 문제를 덮자는 의도도 있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북한은 이번 사건을 이용해 자신들의 임의적이고 주관적인 주장을 기정사실화 하려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상황이 이럼에도 여권에서는 북한의 이런 유사 사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는 것 같다. “계몽군주”나 “전화위복의 계기” 등등의 언어의 유희를 봐도 그렇고, 여당이 국회 차원의 대북 규탄 결의안 채택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여권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평화가 중요한 이유도 결국 인권을 위한 것인데, 지금 이런 반인륜적 사건 앞에서, 가해자가 사과를 했으니 평화를 위해서 나아가자는 말이 나올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최소한 한반도 북쪽은 아직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이런 잔혹하고 반문명적인 야만의 시대를 하루빨리 끝내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의 세계사적 책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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