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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의 월가브리핑]美 돈풀기 한계 왔나…시장 과열 '경고등'

김정남 기자I 2021.04.26 08:40:37

테이퍼링 시작한 캐나다…미국 연준 가시권
돈풀기 줄인다는데…이례적 국채금리 하락
커지는 빚 부담…미국 국채 발행 축소 주목
인플레 없는 성장 위해…돈풀기 점차 줄이나
고민 끝에 나온 증세 카드, 시장 충격 컸다
증세, 성장 둔화시키려나…월가 '긴장 모드'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금융시장을 달구는 이슈가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서도 지난주 캐나다 중앙은행(BOC)의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이 주목 받았습니다. BOC의 테이퍼링은 엄밀히 말해 지난해 10월 시작했습니다. BOC는 당시 월 50억캐나다달러씩 사들였던 장기국채를 40억캐나다달러로 줄였고요. 이번에 다시 40억캐나다달러에서 30억캐나다달러까지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테이퍼링 가속화’ 표현이 적절할 듯합니다.

최근 백신 접종 이후 경기 반등세가 강하게 나타나다 보니, 그 관심도는 더 컸습니다. BOC가 주요국 중 처음 테이퍼링에 돌입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지요. BOC는 올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전망치를 2.3%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목표치를 웃도는 수치입니다. 석 달 전인 지난 1월 대비 무려 0.7%포인트 높였습니다. 캐나다 경제에 영향이 큰 목재 등 원자재 가격은 연일 신고점을 쓰고 있습니다. 기준금리 인상은 앞당겨질 겁니다.

그래서 이튿날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회의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팬데믹 긴급매입프로그램(PEPP) 축소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는데요. 그럼에도 시장은 오는 6월 회의 때 정책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점치고 있습니다. 그 즈음 유럽의 백신 접종이 궤도에 오를 것이라는 게 주요 근거입니다. “6월을 위해 힘을 비축했다”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전세계 돈 흐름을 좌우하는 기축통화국 미국은 어떨까요. 연방준비제도(Fed)는 오는 27~28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엽니다. 미국의 백신 접종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지요. 18세 이상 성인 중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2회 이상 맞은 이의 비중이 53.6%(25일 기준)에 달합니다. 각종 경제 지표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연준이 일단 이번 달은 조용히 넘어가더라도 그 기간이 마냥 길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 공포에 직면할 수 있으니까요.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연준이 최소한 인플레 전망에 대해서는 큰 우려를 표해야 한다”며 인플레 논쟁에 또 불을 질렀습니다. 과연 연준은 조만간 정책 스탠스를 바꿀까요.

캐나다 중앙은행(BOC)이 이번달 통화정책회의에서 내놓은 추후 성장률 전망치 추이. (출처=BOC)


캐나다 테이퍼링에도 잠잠한 금리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습니다. 지난주 각국의 장기국채금리 흐름입니다. BOC의 테이퍼링이 관심을 끌었는데, 캐나다 국채금리는 어땠을까요. 10년물 금리는 회의 당일인 21일 1.5% 안팎에서 움직였습니다. 그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었고요. 그 이후로 큰 변동이 없었습니다. 테이퍼링은 중앙은행이 돈 풀기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겁니다. 경제가 성장할 것 같으니 지원을 줄이겠다는 건데요. 중앙은행이 시중에 나온 장기국채를 덜 사겠다는 건 수급 측면에서 국채 가격을 떨어뜨리는(국채 금리를 끌어올리는) 재료이고요. 10년물 국채금리라는 게 시장이 보는 10년 후 경기와 인플레를 반영한 것인 만큼 경기 측면에서 금리 상승 압력을 줍니다. 그런데 캐나다 금리는 이례적으로 별 반응이 없었던 겁니다.

테이퍼링 조짐이 보이는 유럽은 어땠을까요. ECB 회의를 전후해 독일 분트채 10년물 금리는 -0.27~-0.26%대에서 줄곧 움직였습니다. ECB 정책에 시큰둥했던 겁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BOC의 테이퍼링 소식이 전해진 이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1.55~1.57%대에서 잠잠했습니다. 지난달 말 1.8%에 육박했던 금리가 정작 테이퍼링이 가시권에 들어오니 이렇게 조용한 건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다른 주요국들의 국채시장 흐름도 미국과 흡사한데요. 그 근거는 일본 연기금이 랠리(국채가격 상승·국채금리 하락)를 이끌고 있다는 시각부터 지금이 경기 회복의 정점일 수 있다는 분석까지 매우 복합적입니다. 어쨌든 월가는 국채금리의 하향을 매우 이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클리어 브리지 인베스트먼트의 제프 슐제 투자전략가는 “소비가 시장 전망을 큰 폭 웃돌아도 금리가 떨어지는 건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최근 한 세미나 코멘트를 담은 마켓워치의 보도. (출처=마켓워치)
모든 자산 가격이 폭등하며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경고를 담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 (출처=WSJ)


인플레 없는 지속 성장은 가능할까

기자가 눈여겨 보는 건 미국 재무부의 움직임입니다. 월가에서 미국의 테이퍼링이 부쩍 다가오고 있다는 시각은 늘었습니다. 동시에 미국 재무부가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이고 있다는 점이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빚을 덜 내겠다는 것이지요. 미국은 코로나19 이후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돈을 풀었습니다. 그 덕에 빠르게 경기가 반등하고 있지죠. 하지만 그 후유증에 대한 고민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요. 미국 재무부가 국채를 덜 찍으니 최근 입찰은 호조입니다. 지난 21일 20년물 입찰에서 낙찰금리는 연 2.144%를 기록했습니다. 20년물 금리가 2.4%를 넘기도 했던 게 불과 한 달 전입니다. 미국 장기국채 수요가 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고민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바이든 정부가 경제에 있어 가장 바라는 건 무엇일까요. △인플레가 없는 성장 △부채 부담이 작은 성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올해 들어 미국의 달러화 공급 규모와 속도는 ‘역대급’입니다. 아무리 달러화가 전세계에서 잘 팔린다고 하지만 이런 흐름은 지속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후유증을 최소화하며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해야 합니다. 리플레이션 국면으로 경제를 관리하는 묘미를 발휘해야 하는 게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최대 숙제라는 겁니다. 국채 발행량 감소는 그 연장선상으로 기자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국채시장을 안정화할 수 있고, 인플레가 없는 꾸준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채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킷 주케스 소시에테제네랄 애널리스트는 “미국 부채 규모를 볼 때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미국 경제에 가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연준이 마냥 금리를 올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지금은 금리가 워낙 낮기 때문에 원리금 상환 부담이 작습니다. 그러나 금리가 올라간다면 얘기가 달라질 겁니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덜 찍겠다는, 즉 빚을 덜 내겠다는 건 이를 미리 대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부채 규모를 볼 때, 연준은 인플레 흐름을 볼 때 각각 부작용이 작은 돈 풀기의 한계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겁니다. 국채시장 안정은 이런 틀에서 해석해야 할 듯합니다.

최근 한달간 미국 10년물 국채금리 추이. (출처=CNBC 제공)


고민, 또 고민 끝에 나온 증세 카드

그래서 튀어나온 게 증세 카드입니다. 당국이 돈을 풀 만큼 풀었으니, 이제는 부자들에게서 돈을 걷어서 또 풀겠다는 겁니다. 시장의 민감도는 예상보다 컸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자본이득세에 대한 보도가 나왔을 때 지수가 순간적으로 급전직하 했지요. 증세 충격이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는 분석이 하나둘 나오자 다시 반등했고요. 바이든 대통령이 세율을 올릴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재료인데도 말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증세 그 자체의 충격도 클 겁니다. 다만 그걸 넘어 당국의 정책 여력이 점차 소진되고 있는 건 아닐지, 또 증세가 성장을 둔화시키지는 않을지 하는 생각을 기자는 하고 있습니다. 돈 줄기의 방향이 바뀔 시점에 다다랐는데, 성장이 지속 가능할지에 대한 일부 우려가 있지 않나 하는 겁니다.

중요한 건 증시에 미칠 영향이겠지요. JP모건은 “내년부터 자본이득세를 시행한다면 특정 투자자들이 더 빨리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며 매물 폭탄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당연히 지수 하락 압력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눈여겨 봐야 할 건 증세가 각 업계에 미칠 영향입니다. 만에 하나 증세로 인한 성장 둔화 조짐이 보인다면, 이미 최고점을 찍은 증시는 흔들릴 수 있겠지요. 가뜩이나 정부가 국채를 덜 찍고 연준이 테이퍼링을 앞둔 상황이니 말입니다. 국채시장은 잠잠할지 몰라도 주식시장은 남달리 반응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두달 전 국채금리 폭등 때는 증시 약세 조짐이 있었지만, 그나마 증시 내에서 로테이션 거래(성장주→경기순환주)로 끝났는데요. 이번 △국채 발행 축소 △테이퍼링 가시화 △세율 인상 국면에서는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긴장감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겁니다,

때마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시장 과열에 대한 기사를 냈습니다. WSJ는 “건축 자재부터 주식, 비트코인까지 모든 자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시장이 거품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를 예측한 유명 투자자 제러미 그랜섬은 “이번 상황은 과거 겪었던 다른 어떠한 버블과 다르다”며 “이전에는 경제 여건이 완벽에 가까워 보일 때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경제가 어려운 상태에서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치솟은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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