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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의 문화재 읽기]켄타우로스 옆 동양문양…유럽 품은 中 청화백자

김은비 기자I 2021.02.15 06:00:00

15세기 유럽 알려지며 큰 인기
왕실·상류층 앞다퉈 수집 나서
年 300만점 수출 '동서교류상징'

[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최근 새로 개관한 3층 세계문화관 도자실에는 독특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전시돼 있다. 그 중 눈길을 끄는 하나는 이슬람양식의 중국 청화 주전자다. 새하얀 주전자에는 코발트 빛의 모란, 국화, 연꽃에 둘러싸인 용무늬가 중국식 화풍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주전자의 전체 형태는 페르시아의 금속 주전자를 빼닮았다. 옆에 보이는 접시에도 중앙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가 그려져 있지만, 주변에는 동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과거 도자기가 동서교류의 산물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방증들이다.

네덜란드 델프트 도기 주전자와 화로(사진=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은 세계도자실에서 ‘도자기에 담긴 동서교류 600년’을 주제로 중국 청화백자, 고려청자, 일본 아리타 자기, 네덜란드 델프트 도기, 독일 마이센 자기 등 총 243점을 선보인다. 이중 113점은 네덜란드 프린세스호프 국립도자박물관과 흐로닝어르박물관 소장품이다.

유물의 대부분은 중국의 청화백자다. 김희정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당시 한국에서는 고려청자, 일본에서는 에도시대 자기 등 각국의 개성을 살린 도자기를 제작했는데 전시물에 한국 도자기가 많이 없는 것은 유럽에서 그만큼 수요가 많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인들이 당시 얇고 가벼우며 하얗게 빛나는 ‘중국 청화백자’에 특히 매료됐다는 것이다.

중국 청화백자는 15세기를 지나면서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5세기쯤 완공된 이스탄불의 톱카프 궁전에 남아있는 1만여 점의 중국 도자기들이 이를 증명한다. 청화백자는 유럽인들의 이국적 취향과 중국에 대한 환상을 만족시켰다. 유럽 왕실과 상류층은 동양의 자기를 앞다퉈 수집했다.

특히 16세기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중국 자기는 본격적으로 유럽에 소개됐다. 김 학예연구사는 “17세기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도자기 무역을 독점하기에 이르렀고, 유럽에 들어온 중국 문화는 유럽 문화와 결합해 ‘시누아즈리’라는 독특한 이국적 풍조를 형성하며 공예나 미술계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동인도회사의 기록에 따르면 유럽 시장으로 수출되는 중국 자기는 1년에 300만 건에 달했다고 한다. 경제적 가치도 어마어마했다. 열광적인 중국자기 수집가였던 작센 공국의 아우구스투스 2세(1670~1733)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1세가 소장한 약 1m 높이의 청화백자 화병을 기마병 600명과 바꿨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이 같은 인기에 유럽 각지에는 중국 자기 판매 전문점이 생겼으며, 런던이나 파리 등지에는 중국 자기를 매매하는 전문 상인도 활약했다. 이미 서구에서 식기와 귀족 계층의 관상용으로 중국 자기에 대한 애호가 상당했다. 17세기 말부터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왕가나 귀족들은 수집한 자기를 빼곡히 채운 진열실 같은 방을 만들기도 했다. 장남원 이화여대 교수는 “18세기에 저택을 설계하던 건축가들은 반드시 자기의 방을 만들었다”며 “저택이나 궁정에 설치된 자기들은 예술적인 수준보다 그 양과 화려함으로 한껏 위세를 과시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자체적으로 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중국 도자기의 인기는 사그라들었다. 유럽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 자체적으로 자기를 생산했다. 1709년에 독일 마이센에서 최초의 백자가 제작됐고, 18세기 후반에는 영국 웨지우드에서도 자기 제작을 했다. 중국 자기에 자극을 받은 유럽인들이 자기 생산의 필요성을 느낀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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