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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나 강예나 "심청, 억척스런 나와 닮아"

이윤정 기자I 2013.05.06 08:55:49

9~12일 국립극장서 '심청' 공연
원통하고 비통한 감정 표현 노력
"슬픔의 색 매번 같을 수 없다"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 안하고파
"그만큼 후회없이 연습하며 살았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예나. 지난 3월 마지막 ‘백조의 호수’ 공연을 마친 그가 이번에는 발레 ‘심청’에서 주인공 심청 역으로 관객들을 만난다(사진=권욱 기자 ukkwon@).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영국 로열발레학교, 키로프-마린스키 발레단 한국인 최초 입단.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입단한 한국인 1호. 어느덧 국내 발레계 수석무용수 중 맏언니가 된 발레리나 강예나(38)에게는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따라붙는다. 1996년 유니버설발레단에 솔리스트로 입단해 이듬해에는 최연소 수석무용수라는 기록도 세웠다.

30여년의 동안 춤에 대한 고집도 생겼다. “춤을 춰야 하는 게 내 운명이었다.” 그간 이뤄낸 성과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피나는 노력을 해왔던 그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를 하고 싶진 않다. 그만큼 여한이 없을 정도로 연습했다.”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20대 초반에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수술을 하는 아픔도 겪었다. 이른 시기에 찾아온 부상으로 잠시 슬럼프도 겪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지금의 강예나를 만든 저력이다.

지난달 30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그날도 연습 후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9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창작발레 ‘심청’을 위해서다. 그는 주인공 심청 역을 맡았다. 수차례 공연한 작품이라 쉬엄쉬엄 할 법도 한데 여전히 그는 연습벌레다.

- ‘백조의 호수’가 더 익숙할텐데 ‘심청’을 연기하는 느낌은

▲발레 ‘심청’은 1986년에 초연됐다. 올해로 27년 째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현재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의 심청을 보면서 ‘나도 꼭 심청이 될꺼야’라는 꿈을 꿨다. 그러다 2004년에 처음으로 ‘심청’에 출연하게 됐다. 감개무량하더라. ‘심청’은 한국고전이긴 해도 발레로 만들어진 작품이기 때문에 특별히 힘든 부분은 없었다. 다만 봉사들의 잔치장면이나 심청의 움직임에 한국적인 몸짓이 많이 들어간다. 한국무용을 배워본 적이 없어서 동작을 할 때 조금 어색했다. 발레를 하면서도 덩실덩실 탈춤을 추는 데 이런 부분이 새롭다.

- 강예나 식 심청의 특징이 있나

▲주안점을 둔 것은 스토리텔링이다. 고운 선의 표현과 섬세한 스토리텔링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객석에선 눈썹의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할 수 있지만 카메라가 바로 앞에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한다. 심청을 가련한 여주인공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한 여자로 해석했다. 그래서 슬픈 장면도 모두 똑같이 표현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원통하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한 심청의 모습을 담았다.

- 출연했던 작품 중 대표작을 꼽자면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오네긴’ ‘심청’이 네 가지다. 약한 캐릭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련한 여주인공이나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마법을 풀어주길 기다리는 역은 나와 잘 맞지 않는다. 강단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작품마다 내 색깔을 입히려고 노력하는데 강인한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매번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여기서는 어떻게 웃을까’ ‘여기서는 어떻게 울까’ 등 매번 다른 방식으로 고민한다. 내 스스로가 발레만 바라보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부분이 있다. 실제 성격과 비슷해서 강한 캐릭터에 애착이 가는 것 같다.

인터뷰 날도 강예나는 연습 후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를 하고 싶진 않다. 그만큼 여한이 없을 정도로 연습했다”며 웃었다(사진=권욱 기자 ukkwon@).


- 지난 3월 마지막이라고 말한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다. 심경이 어떤가

▲백조를 졸업해서 너무 행복했다. 마지막 ‘백조의 호수’와 작별인사를 너무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사실 ‘백조의 호수’를 연습하면서 이렇게 즐겁게 한 적이 없었다. 잘 끝냈다는 느낌이 들어 감사하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 동안은 구름을 타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짊어지고 있던 큰 짐을 털어놓은 기분이다. 지금도 홀가분하다.

- 최근 무용복 브랜드 ‘예나라인’을 선보이면서 사업가로도 변신했다. 무대 이후의 삶에 대한 설계인가

▲아니라고는 할 수 없다. 언제 떠날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무대를 떠나야 한다. 그간 발레를 하면서 느꼈던 것을 어떻게 잘 풀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왔고 무언가는 해야 한다고 느꼈다. 국내에 은퇴한 무용수들은 많지만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한 것은 발레에선 내가 처음이다. 현장에서 어떤 옷이 필요한지를 알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노리는 디자인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기존에 있는 큰 회사와 경쟁하고 싶은 게 아니라 내 개성대로 하고 있다.

- 창작발레가 ‘발레 한류’를 이끌었다. 창작발레의 과제와 미래에 대한 생각은

▲예술의 중요성은 무언가를 새로 만드는 것에 있다. 창작발레야말로 발레의 미래다. 세계적인 추세도 창작으로 가고 있고 ‘심청’이 사랑받는 이유도 창작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창작발레가 많이 나와야 한다. 다른 여느 발레단이 이미 했던 작품은 아무리 잘해봐야 본전이다. 훌륭한 안무자들이 나서서 창작발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를 꿈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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