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의 IT세상]집전화가 떠나간 자리

편집국 기자I 2020.11.26 06:00:00
[김지현 IT 칼럼니스트] 휴대폰을 사용하면서 사라진 대표적 기기 중 하나가 집 전화다. 2019년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집전화 회선수는 100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국내 가구수 2000만을 기준으로 볼 때 절반도 안된다. 국민 95%가 스마트폰을 사용 중인데 굳이 따로 집전화를 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집 전화는 더욱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집전화가 사라진 건 아니다. 집전화가 디지털과 결합되어 다른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2019년 스마트 스피커 판매는 800만대가 넘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그런 스마트 스피커의 기능 중에는 전화 기능이 제공된다. 손에 늘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굳이 스마트 스피커에 전화 기능이 탑재되어 있을까. 휴대폰으로의 전화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지만, 스마트 스피커는 그 장소에 전화를 거는 것이다. 즉, 기존의 집전화가 주던 향수를 준다. 집으로, 가게로 전화를 거는 것처럼 스마트 스피커는 스피커가 놓여 진 그 장소로의 통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실제로 카카오의 스마트 스피커는 카카오톡을 이용해서 통화를 하고, SKT의 ‘누구’는 데이터망을 통해 ‘누구’의 개별 디바이스로의 연결을 지원한다. 구글홈은 ‘구들듀오’라는 앱을 이용해서 구글 계정으로 등록된 모든 디바이스에 통화를 시도할 수 있다. 사람이 아닌 기기에 전화를 걸어 그 기기 앞에 있는 누군가와 통화를 할 수 있다. 또한, 아마존의 ‘알렉사’가 탑재된 ‘에코’라는 스피커는 스마트폰 알렉사 앱을 이용해서 다른 알렉사를 설치한 사용자의 폰이나 스피커에 연결해서 통화가 가능하다.

심지어 구글의 스마트 스피커인 구글홈은 ‘브로드캐스트’라는 기능을 이용해 무전기처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구글홈에 음성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즉, 주방에 설치한 구글홈 미니에서 ‘OK 구글, 브로드캐스트’라고 말한 후에 ‘범준아, 재희야 저녁 먹자’라고 하면 작은방과 거실에 설치된 구글홈에서 마치 무전기처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이렇게 통화는 사람과 사람이 전화기나 휴대폰을 이용해서 한다는 통념이 깨지고 있다. 유선 집전화가 사라진 뒤 스마트 스피커가 무선 와이파이로, 그리고 다양한 기기와 장소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새로운 통화 경험을 제시하고 있다.

스마트 스피커뿐이 아니다. 최근 출시되는 IP 카메라에는 통화 기능이 제공된다. 카메라로 영상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연결한 집 내 IP카메라를 통해서 통화를 할 수 있다.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말을 걸 수 있고 전화 통화하기 어려운 아기와 통화를 할 수 있다. 회사에서 거실에 설치한 카메라를 보면서 강아지를 보다가 내 목소리를 전송할 수 있다. 사람을 넘어 인터넷에 연결된 스마트 스피커 등의 기기를 이용해 공간을 연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카메라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로는 음성 통화가 아닌 화상통화가 가능하다. 스마트폰과 스피커가 서로 연결되어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스마트폰에서의 화상통화는 음성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용이 적지만 집 내에서의 스피커, 카메라 더 나아가 TV와 냉장고 앞에서 화상통화를 사용하는 것은 훨씬 자연스럽고 편리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런 사물 앞에서의 통화는 사람을 지정해서 통화하는 방식이 아닌 공간과의 연결이기 때문에 통화라는 것이 한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영속적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즉,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계속 연결해두는 것이다. 통화가 목적이 아니라 그 공간과의 연결이 목적이라 그냥 연결해서 그 공간의 소음과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꼭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시간을 제한할 이유도 없다. 두 공간이 그냥 연결되어서 떨어져 커피를 마시거나 서로 공부나 일을 하고 있거나 영화를 보고 있어도 된다. 그런 새로운 통화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달라진 사물 인터넷 기반의 집 전화가 주는 가치이다.

오래도록 전화는 번호를 이용해서 특정인과 연결을 해주는 경험을 제공해왔다. 하지만, 이제 통화의 경험이 달라지고 있다. 전화기로만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달린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사물은 통화를 할 수 있는 기기가 되고 있다. 이들 기기를 이용해 서로 연결해서 통화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만의 대화가 아니다. 공간과 사람 그리고 사물의 연결을 통해 새로운 통화 경험을 가질 수 있다.

사물에 연결해서 통화하며 사물에 명령을 내리고 조작할 수 있으며, 공간에 연결해서 공간의 모든 소음과 장면을 듣고 볼 수 있다. 이때 번호는 유명무실해진다. 공간 속 특정 기기 혹은 기기에 연결된 사용자 계정을 통해서 상호 연결된다. 새로운 번호를 부여 받는 것이다. 그 번호는 국가를 벗어나 전 세계에서 통용되며 그런 새로운 계정을 지배하는 플랫폼이 미래 통화 서비스의 주도권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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