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권소현 기자I 2021.02.18 06:00:00

신세철 경제컬럼니스트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일찌감치 노벨문학상을 받은 후에도 94세까지 치열하게 노력하면서도 버나드 쇼(G. B. Shaw)는 우물쭈물 삶을 살았다며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정직이 최선이라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세상을 정직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직한 세상이 될 때를 기다리다가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영영 정직을 가르치지 못하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그 특유의 냉소주의 경고다.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무엇보다도 정직해야 험한 세상을 슬기롭게 헤쳐나가 멋진 삶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강조의 의미다.

사회가 일그러져 사람들이 정직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많아서 사회가 혼란스러운지 인과관계는 분명치 않다. 양심과 정의가 사방에 피어나도록 지키는 마지막 성채가 되어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사법부 수장의 거짓말파문이 ‘바이올린의 G현’처럼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윗분일수록 채신머리없이 크든 작든 거짓말을 해대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진다. 패거리들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거짓을 진실로 바꾸려 도색하고 도금하려고 야단법석을 떤다. 거짓말을 옹호하려다 보면, 까마귀처럼 깍깍거리며 얼토당토 한 논리를 뒤죽박죽 섞어 사람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이 없는 세계를 헤매게 한다.

저명인사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까닭은 거짓말을 늘어놓아 웃음거리가 되다가도 흐지부지 넘어가는 오염된 사회풍토 때문일 게다. 아니면 수치심과 죄의식을 상실하고 자기기만과 허위의식에 빠져 “너나 나나 다 그렇고 그렇다”는 패배주의에 포위되어 있기 때문일까? 그러다 보면 선량한 시민이 기대야 할 언덕이 무너지며 정신세계가 황폐해진다. 거짓말 권하는 사회의 피해자들은 거짓말쟁이나 그를 둘러싼 바람몰이 꾼들이 아닌 일반시민들이다. 거짓말을 하다 하다 억지춘향 핑계를 대도 그냥 넘어가는 사회는 잘못을 고칠 기회가 없어져 급기야 사회적 수용능력(absorptive capacity)이 취약해져 성장잠재력을 시나브로 갉아먹는다.

한마디도 거짓말을 못해 바보 하수 취급을 당했던 천상병 시인은 동백림사건 때 엉뚱하게 간첩으로 몰려 6개월 동안 갖은 고문을 받았다. 독지가들은 행방불명된 그가 죽은 줄 알고 천상병 ‘유고시집 새’를 발간했는데, 행려병자가 되어 시립정신병원에서 죽음을 앞에 있다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인생 대반전이 이뤄졌다. 가식 없는 하수를 흠모하던 목순옥이 병들어 오갈 데 없는 외톨이의 평생 반려자가 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천사는 바보가 그리 좋아하는 막걸리를 항상 사다 놓으며 아무것도 부럽지 않게 해줬다. 하수는 시 ‘행복’에서 “예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행복을 오래 누리다 사랑하는 아내 앞에서 귀천했다.

천행으로 지옥을 빠져나온 그에게 홀연 행복의 문이 열린 까닭은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기 때문 아닐까? 천상병은 시 ‘미소’에서 “언덕에서 언덕으로 가기에는 수많은 바다를 건너야 한다지만,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오라 나의 친구여...”라고 미래의 희망을 그렸다. 절망의 낭떠러지로 떨어지다 맨 밑바닥에서 기적을 만난 게다. 이는 마치 저주받은 영혼들이 끝없이 벌을 받는 9단계 지옥을 거쳐서, 덜 무거운 죄를 씻어내는 7단계 연옥 여정을 마친 단테가 베아트리체와 함께 환희에 차서, 별이 빛나는 천국을 바라보는 신곡(神曲)을 연상케 한다.

단테는 그가 꿈꾸는 몽상세계를 머릿속에서 여행하였지만, 천상병은 그에게 닥친 현실세계를 극복하고 기적을 만났다. 기적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다가오지 않고 극한 상황에서도 차곡차곡 정직을 쌓아갈 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햇빛 반짝이는 언덕’으로 새처럼 날아가려면 평소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바른말만 하기도 모자라는 시간을 거짓말로 허비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어떠한 재물과 권세도 무의미해지는 되는데다, 남에게 피해까지 주게 되니 그 얼마나 야속하고 속상하고 송두리째 밑지는 인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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