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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에는 뜨거운 국밥이 딱! [물에 관한 알쓸신잡]

이명철 기자I 2022.07.30 11:30:00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국물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를 끓이면 국물은 기본으로 먹을 수 있고 건더기의 양에 따라 음식의 질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건더기는 고사하고 당연하게 기대했던 국물마저 먹을 수 없으니 부수적으로 생기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쓰이지요.

(사진=이미지투데이)


다른 나라 음식에도 삶는 요리가 많지만 국물을 기대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국물은 요리재료를 가공하는 용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재료를 삶고 난 국물은 버리는 게 보통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생긴 국물을 버리지 않고 요리에 포함시킵니다. 심지어 쌀을 씻은 쌀뜨물도 버리지 않고 찌개 끓일 때 사용할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음식에는 국물이나 물을 부어 먹는 음식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원에 대해서는 물이 깨끗하고 풍부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지만, 가난과 전쟁 때문이라는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합니다.

국은 주재료가 물이고 약간의 고기와 야채 만으로도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시절 국물로나마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국을 좋아하고 우리 음식에 국물을 기반으로 하는 음식이 많은 이유가 가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짠합니다.

기원이야 어떻든 우리나라 밥상에 국은 빠질 수 없는 메뉴입니다. 밥과 국, 그리고 반찬으로 구성되는 우리나라 밥상 구성은 학교나 군대 등의 단체 급식에 사용하는 식판 모양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식판 앞의 왼쪽은 밥을 담을 수 있도록 네모 모양이고 오른쪽은 국그릇을 놓을 수 있도록 둥근 모양입니다.

밥상에 국이 빠지면 안된다는 생각은 단어에도 그대로 투영되었습니다. 음식(飮食)이라는 단어에는 마신다는 의미(飮)와 먹는다는 의미(食)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중국어는 食物, 일본어는 食べ物로 마신다는 의미는 담고 있지 않습니다.

밥과 국을 같이 먹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식사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숟가락입니다. 국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는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숟가락을 주된 식사 도구로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일본과 중국도 식사 중에 숟가락을 쓰기도 하지만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잠깐 쓰는 용도이기 때문에 숟가락의 모양도 국물을 많이 덜어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서양에도 스푼은 있지만 식사 전에 스프를 떠먹을 때만 사용합니다.

밥과 국이 같이 제공되는 밥상은 자연스레 밥을 국에 말아 먹는 국밥으로 발전합니다. 국밥은 특별한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었고 깍두기나 김치만 있으면 훌륭한 한 끼가 됩니다. 게다가 빨리 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식 메뉴로 가장 선호하는 메뉴는 국밥입니다. 조선시대 시대극에서도 주막을 찾는 사람들의 주문은 ‘주모, 여기 국밥 한 그릇 말아주시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렇게 국밥 민족이 된 걸까요? 국밥이 시대를 막론하고 대표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 잡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주식인 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마솥으로 밥을 짓던 옛날에는 밥을 금방 짓기도 쉽지 않고 따뜻하게 보온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신속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게 외식업계의 노하우인데 따뜻한 밥을 금방 준비하기 어렵다는 것은 식당 운영에 치명적인 제약이었습니다.

이 제약 때문에 조선시대 중기까지 주막에서는 식사를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주막이라는 이름 그대로 술과 잠자리만 제공했습니다.

술만 가능했던 주막의 메뉴판에 조선 후기 들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보온밥솥 없이도 밥을 항상 따뜻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등장했기 때문이지요.

그 방법은 바로 토렴입니다. 썩 익숙하지 않은 단어인 토렴은 식은 밥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밥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토렴의 등장으로 따뜻한 국밥을 금방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국밥은 조선시대 주막의 시그니처 메뉴가 됩니다.

가난에서 시작된 우리의 국밥 문화는 먹거리가 넉넉해진 지금도 여전히 인기 있는 메뉴입니다. 요즘같이 더운 날씨에도 뜨거운 국밥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를 연발하는 걸 보면 국밥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울푸드를 넘어 DNA로 자리잡은 듯합니다.

그리고 이 DNA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뚜렷하게 발현되는 듯합니다. 직장인들이 점심 메뉴를 고민할 때면 부장님은 늘 얼큰한 국밥을 제안하니 말입니다.

“부장님, 오늘은 국밥 말고 파스타 먹으러 가요.”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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