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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배주 양조원 대표인 이기춘(76) 선생은 25일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86-가호 기능보유자이자 식품명인 제7호다. 이번 남북정상회담 공식 만찬주인 문배술을 계승하고 있는 평양전통 문배술 가문의 4대 전수자. 현재는 그의 아들인 승용(43) 씨가 5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문배술은 메조와 찰수수로 만든 증류주다. 문배나무의 과실향이 난다고 해서 문배술이라고 불린다. 증류한 술은 바로 마시지 않고 술병에 담아 1년 정도 숙성과정을 거친다. 그래야 문배주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알코올 농도는 40도 정도다. 그러다 저도주 트렌드에 맞춰 23도와 25도, 낮은 도수의 술을 따로 내놨다.
이 선생은 자택에 선대 계승자인 증조모 박씨 할머니와 조부 이병일(1895~1955년), 부친 이경찬(1915~1993년)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을 따로 뒀다. 박씨 할머니는 고려시대부터 이어져온 평양의 문배술을 150여 년 전에 다시 살려낸 인물이다. 이 선생은 “할머니가 문배술의 원조지, 그리고 대를 이어 계승한 것”이라며 “1940년에 평양 평천 양조장에서 문배술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낸 세금만 평양시의 1년 예산과 맞먹을 정도였다”고 했다.
서울에서 문배술을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건 1990년 6월부터다.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평양 양조장을 접고 한국으로 피난, 전후인 1952년부터 하월곡동에서 문배술을 만들었다. 그러다 1955년 양곡관리법으로 곡식으로 만든 술 생산이 금지됐고 전두환 정권 때 문배술 제조 및 판매허가가 나면서 다시 술 생산에 들어갔다. 이 선생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민들에게 준 혜택이겠거니 생각했다. 농산물을 수입해오니 우리 곡식이 너무 남아돌면 안 되니까 술을 빚게 허가를 내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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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은 이번 기회에 문배주가 ‘통일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친 때부터 통일을 염원하며 술을 빚어 왔기 때문에 그 소망이 현실이 되는 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좋은 술은 좋은 물에서 나온다. 평양 대동강 일대의 주암산에서 나오는 샘물로 문배주를 만들고 싶다. 석회암층에서 나오는 지하 암반수로 술을 빚어야 한다. 그래야 술맛이 제대로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배주 술병에는 한반도가 그려져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통일의 날이 앞당겨졌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