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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쇠창살' 감금·학대 알렸지만…센터 "목사가 그럴리가"

채나연 기자I 2024.03.27 06:54:44

지적장애인 지인 도움으로 행정복지센터 신고
센터 '부실 조사' 의혹
1년 4개월 수사 지체

[이데일리 채나연 기자] 중증장애인들을 감금 및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교회 목사의 범행을 1년 4개월 전 피해자들이 행정당국에 알렸지만 이를 수사기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9월 탈출 당시 A씨의 모습(사진=연합뉴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중증 지적장애인 A(50대)씨는 2021년 7월부터 쇠창살이 설치된 청주의 한 교회 부지 내 정자에 감금돼 목사 B씨에게 쇠 파이프로 폭행을 당했다.

B씨는 2020년 초 요양병원에서 목회 일을 하며 만난 A씨를 잘 돌봐주겠다며 교회로 데려온 뒤 그가 용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수시로 폭행하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정자에 쇠창살을 설치해 가뒀다.

이후 2022년 9월 26일 A씨의 지인들이 쇠창살에 갇혀 있는 그를 발견하고 목사에게 항의해 14개월 만에 탈출했다.

A씨의 지인들은 곧바로 인근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주민복지팀 직원에게 A씨가 감금된 모습의 사진을 보여주며 B씨의 범행 사실을 알렸지만, 센터 직원은 “목사라는 사람이 그럴 리 없다. 경찰에 신고하시면 된다”며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폭행으로 짓이겨진 A씨의 귀(사진=연합뉴스)
당시 온몸이 멍투성이였던 A씨는 행정복지센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앞에서 지인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A씨 상태를 직접 보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민원을 받은 직원이 육아휴직 중이라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은 어렵지만, 목사가 그런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쉽게 믿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튿날 교회에 조사를 나갔지만, 목사가 A씨의 공간이라며 교회 안에 있는 방을 보여줬고, 별다른 감금 시설을 발견하지 못해 더 이상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B씨가 장애인들을 폭행하고 감금했던 쇠창살이 설치된 정자는 최근까지도 교회 부지 내에 남아 있는 것을 고려하면 현장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행정복지센터에 A씨의 피해 소식을 알렸던 지인 또한 지적장애가 있어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본격적인 경찰 수사는 지난 1월 A씨와 함께 같은 교회에서 생활하던 뇌병변 장애인 D(60대)씨가 목사에게 금품을 빼앗기고 폭행당한 것을 충북도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발견해 D씨와 함께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시작됐으며 A씨에 대한 사건도 함께 알려지며 수사가 확대됐다.

한편 B씨는 2014년부터 해당 교회 목사를 맡으며 최근까지 모두 6명의 장애인을 교회로 데려온 뒤 그들의 기초생활수급비와 간병급여 등을 가로채고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의 교회에 비장애인 신도는 한 명뿐이었으며, 외딴곳에 위치해 마을 주민들도 교회 내부 사정을 잘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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