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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자리에선 무슨 일이?..박근혜-이재용 '독대의 재구성'

윤종성 기자I 2017.08.21 06:00:00

1·2차에선 '승마 지원' 얘기하고
3차에선 홍석현 회장에 대해 분노
경영권 승계·청탁 드러나지 않아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뇌물사건 1심 선고가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삼성이 300억원 규모의 돈을 건넨 사실은 확인된 만큼, 쟁점은 이 돈이 부정한 청탁의 대가인지, 강요로 낸 돈인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건넸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 측에 지원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재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가 청와대에 청탁할 일은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독대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두 사람의 얘기를 들어봐야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진술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세 차례 독대 자리를 재구성했다.

◇5분간의 첫 독대..朴 “승마협회 맡아달라”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1차 독대는 2014년 9월15일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 행사에서 이뤄졌다. 행사 도중 안봉근 비서관이 이 부회장에게 다가와 “대통령께서 잠깐 뵙기를 원한다”고 했고, 5분여 동안 짧은 첫 독대를 했다.

이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은 “개소식이 잘 치러진 것 같다”면서 “이건희 회장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었다. 그러더니 대뜸 “승마협회를 삼성이 맡아달라”며 “올림픽에 대비해 승마선수들에게 좋은 말도 사주고 전지훈련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고 이 부회장은 진술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정유라 등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특검이 주목한 것은 첫 독대 자리가 이뤄진 시점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지 4개월이 지난 뒤였기 때문이다. 이 회장이 병상을 털고 일어나 복귀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이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소속 임원진들이 본격적으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시작했다고 본 것이다.

삼성 측은 경영권 승계에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는 입장이다. 이 회장이 와병 중이지만 엄연히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경영권 승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도 1987년 선친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사망 이후에야 추대 형식으로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한화만도 못해”.. 朴의 질책에 당황한 李

두 사람의 2차 독대는 2015년 7월25일 청와대 안가에서 30여분간 진행됐다. 당시 이 부회장은 메르스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 2번의 미국 출장 등으로 바빴을 때였다. 하루 전날(2015년 7월24일)에는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해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과 오찬 행사도 있었다.

이 와중에 청와대에서 ‘7월 25일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에 들어오라’는 통보가 왔다. 이 부회장은 독대를 앞두고 최지성 실장, 박상진 사장(승마협회장)과 만나 올림픽에 대비한 승마 지원 진행 사항을 보고받았다. 또 최근 삼성 채용 인원과 시설투자액, 연구개발 비용 등을 머릿속으로 외웠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25일 오전 청와대로 갔다. 안종범 전 수석은 독대가 끝날 무렵 잠깐 들어왔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활용하는 사업을 하면 평창올림픽이 잘 될 테니 메인 스폰서로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영재센터 등 구체적 단체 이름을 언급하거나 재단 출연을 직접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박 대통령은 갑자기 “삼성이 승마협회 운영을 제대로 안 한다, 한화그룹만도 못하다, 선수들 해외 전지훈련도 안 보내고 좋은 말을 안 사주고 있다, 제대로 해라, 승마협회에 파견된 삼성 임원들을 김재열 직계로 바꾸라”면서 질책했다고 진술했다.

이 부회장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메모지에 대통령이 언급한 사람들 이름을 메모했다.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고 “이 문제는 누구와 협의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지만,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날도 ‘정유라’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朴, 3차 독대에서 진노..李 “두려웠다”

2016년 2월 15일 이뤄진 세 번째 독대 자리는 미래 신사업을 소개해달라는 청와대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바이오산업과 사물인터넷(IoT), 전장산업 위주로 답변을 준비했다. 최지성 실장에게 승마협회 업데이트를 요구하니 “잘 돌아가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오전 10시 40분쯤 독대가 시작됐다.

대화 중 박 전 대통령은 갑자기 JTBC와 홍석현 회장 얘기를 꺼냈다.

이 부회장은 2차 독대 당시 승마협회 건으로 질책받았을 때는 당혹스러운 정도였지만, 3차 독대 때는 두려웠다고 했다. 삼성이 정치와 엮여 들어갈 수 있겠다는 위기감도 들었다고 한다. 특검 주장처럼 “정유라 잘 지원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받거나 회사 관련 청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면담이 끝난 뒤 곧장 홍석현 회장을 만나 대통령 얘기를 전했다고 했다.

이 부회장의 진술만 놓고 보면 부정한 청탁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어 보인다. 독대 이후 박 전 대통령의 말을 적었다는 안종범 수첩에도 경영권 승계 등 청탁을 입증할 기록은 없는 상황이다. 삼성이 재판 시작 후 한결같이 “승계작업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는 특검 주장은 근거가 모호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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