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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제성' 트집잡은 원전 폐쇄, 가동 중단만 고려했다니

논설 위원I 2020.10.21 06:00:00
감사원이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다는 내용을 포함한 감사보고서를 어제 공개했다. 감사원은 “(백운규 당시)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조기 폐쇄 결정을 주도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즉시 가동 중단 외에 다른 방안은 고려하지 못하게 했다”며 “폐쇄에 유리한 내용으로 결과가 나오도록 관여해 경제성 평가업무의 신뢰성을 저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폐쇄가 타당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등 다른 요인도 검토해야 했지만 이는 감사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 결과는 국회가 지난해 9월 30일 감사원에 감사 요구를 한지 386일 만에 나온 것이다. 감사 시한은 지난 2월 말이었으나 정치권의 외압과 조사대상 정부 기관의 방해가 계속된데다 내부 의견 조율에 난항을 겪은 탓에 결과 발표가 8개월이나 늦어졌다. 감사 결과에 따라서는 현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어 정치권과 산업계, 학계가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하지만 감사원은 이날 발표에서 경제성 평가에 촛점을 맞추는 한편 폐쇄 과정에 간여한 관계자들에 대한 제재를 최소화했다. 백운규 전 장관은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재취업, 포상 등을 위한 자료로 활용하도록 인사자료를 통보했지만 한국수력원자력 정재훈 사장에겐 주의를 요구했다. 또 관련 자료를 무단 삭제하도록 지시하거나 삭제함으로써 감사를 방해한 2명에 대해서만 징계를 요구했다. 폐쇄 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면서 은폐, 축소 등의 방해업무에는 예상과 달리 엄한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발표에도 불구, 정치권의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야권은 무리한 탈원전 정책이 국민적 손실을 초래했다며 문제삼을 것이 확실한 반면 여권은 조기 폐쇄가 적절했다고 맞설 것이 분명해서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유념해야 할 큰 교훈은 정책 집행의 투명성과 절차적 정당성이다. 선입견을 앞세운 정책 목표와 이에 맞춘 졸속 집행이 7000억 원이나 들여 2020년까지 가동할 수 있도록 한 원전을 멈춰 세우고 나라를 갈등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었음을 정책 당국자들은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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