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지 않느냐고요? 이 생활 엄청 편해요. 한 가지 일에만 오래 매달리면 답답하잖아요. 디지털 기기로 5~6가지 업무나 잡무를 처리하면 퇴근을 4시간은 족히 앞당길 수 있어요. 철야는 딱 질색이거든요."
'디지털 쿼터(quarter)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어로 '쿼터'는 4분의 1이다. 간편하고 빠른 디지털 기기를 쓰는 10~30대 신세대들이 40~60대 기성세대에 비해 4분의 1시간 내에 일 처리를 한다는 의미에서 디지털 쿼터족이란 신조어가 나왔다. 기성세대가 1시간에 하는 일을 15분도 안 돼 뚝딱 끝낸다. PC기능이 강화된 휴대전화인 스마트폰, 휴대용 PC인 태블릿PC, 음악은 물론 동영상을 볼 수 있는 PMP까지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어지러운 이 기기들은 '디지털 쿼터족'에겐 필수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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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51) 교수는 "'디지털 쿼터족'은 '멀티태스킹(동시에 여러 일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 20~30대가 주축'"이라며 "한 가지 일에 진득하게 집중했던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생각은 짧은 대신 행동은 빠르다"고 했다.
디지털 쿼터족은 최소한 한번에 2~3가지 일을 재깍재깍 마쳐야 한다. 때문에 더 간편하고 기능이 다양한 디지털 기기가 새로 출시되면 기존에 쓰던 제품을 곧장 갈아치우고 기기를 '업그레이드'한다.
숙명여대 유소이(22·중어중문학과 3년)씨는 PMP·노트북 등 5가지 디지털 기기를 가방에 넣고 통학한다. 유씨는 "디지털 기기들이 드물었던 어린 시절엔 어떻게 살았나 싶다"며 "수업 시간에 모르는 부분은 직접 교수님한테 물어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노트북과 휴대폰으로 검색해 확인한다"고 했다.
취업 준비생 중에도 디지털 쿼터족이 많다. 김주민(28)씨는 인터넷 검색과 문서작성 기능을 갖추고 무게가 1㎏ 미만인 '넷북'(netbook)을 2년 전부터 쓰고 있다. 김씨는 "취업 준비용 책에 나온 상식을 넷북에 저장해 두고 버스나 지하철에서 외우며 시간을 절약한다"고 했다.
이들은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생활은 속 터져서 못 참는다. 오랜 시간 토론을 싫어하고 손으로 글씨 쓰는 것조차 답답해한다. IT(기술정보) 회사에 다니는 김모(33)씨는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과 깊게 토론하고 통화도 1시간 이상 했지만 지금은 토론은커녕 5분 이상 통화도 귀찮다"고 했다. "방구석에 쌓아둔 음악 CD와 책을 인터넷 중고장터에 팔고 있어요. 새 정보를 한번 접하고 나면 더 이상 '가치 있다'고 못 느끼거든요. 괜히 짐만 되는 것은 버려야죠."
최혁준(16·수원 효원고)군은 "스마트폰에 저장된 영어 단어장 프로그램으로 바로바로 영어단어를 찾는다"며 "20~30분 이상 책을 뒤지거나 읽으면 금방 지겨워진다"고 했다.
일부 디지털 쿼터족들은 "디지털 기기가 좋은 물건만은 아니다"고 했다. 아이폰 등 3가지 디지털 기기를 갖고 있는 김모(29)씨는 "넘치는 정보량을 실시간 접하다 보니 '내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아 디지털 기기를 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고 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박길성(53) 교수는 "멀티태스킹은 정보화 사회의 경쟁력이지만 많은 정보를 대충 훑고 마는 습관에 젖으면 인내력이나 주의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