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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그만한 해결사가 없다‥힘실리는 이동걸 연임

이승현 기자I 2020.08.18 06:00:00

임기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후임 하마평 없어
구조조정 성과 냈지만 아시아나 숙제 남겨 둬
금융권서는 연임 관측‥이 회장 "미련 없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지금도 충분히 피곤하다.”

‘기업 구조조정 지휘자’ 이동걸(67) KDB산업은행 회장이 다음 달 10일 3년 임기를 마친다. 보통 공공기관 같았다면 후임에 대한 하마평이 차고 넘칠 시기다. 하지만, 산은 안팎은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다. 코로나 사태 이후 경제불확실성이 더 커진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을 포함해 복잡하게 얽힌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맏형 역할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방증이다. 금융권에서는 특유의 강단과 풍부한 구조조정 경험을 고려하면 산업은행 수장으로 이 회장만한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이 회장은 “미련은 없다”며 연임설에 말을 아끼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지난 5월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기간산업안정기금 출범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기업 구조조정 연이은 성과…대우건설 등은 미완

2017년 9월 취임한 이 회장은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원활히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표적으로 금호타이어와 성동해양조선, 한국GM, STX조선해양, 동부제철 등의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대우조선해양이 20년간의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나 새 주인을 찾을 가능성도 크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해 3월 대우조선해양 본계약을 체결한 뒤 인수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 들어선 코로나19로 경영난에 처한 대기업의 자금지원과 구조조정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두산중공업에 지난 3월부터 3차례에 걸쳐 긴급운영자금 및 한도대출 형태로 총 3조6000억원을 지원했다. 긴급 수혈을 받은 두산중공업은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바탕으로 자산매각 작업에 신속히 돌입해 이달 초 처음으로 차입금을 상환했다.

대형항공사의 경우 올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각각 1조2000억원과 1조6000억원의 신규자금을 지원했다. 채권단 지원을 받은 대한항공은 유상증자와 유휴자산 매각, 사업부서 매각 등 자구안 이행을 진행하고 있다.

성공 사례만 있는 건 아니다. 대우건설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산업은행은 2018년 1월 호반건설을 대우건설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호반건설이 돌연 발을 빼 매각이 무산됐고 지금까지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대우건설이 KDB인베스트먼트의 기업구조개선을 거쳐 가치가 높아지면 매각을 재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쌍용차도 미완의 숙제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의 파완 고엔카 사장을 직접 만났다. 그러나 이후 마힌드라는 신규자금 투입계획을 철회하며 사실상 발을 뺐다.

쌍용차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지원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산업은행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현재 비핵심 자산매각 작업과 함께 새 투자자 찾기에 나섰는데 실패하면 유동성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산적한 현안에 부담되는 자리

가장 큰 문제는 아시아나 매각이다. 이 회장의 최대 업적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풀기 어려운 숙제가 돼 버렸다. 아시아나 항공을 인수하기로 한 HDC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를 요구하며 버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HDC현산과 금호 측 대표이사가 막판 담판이 남아 있지만 합의점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권에서는 대면협상이 계약무산 후 벌어질 계약금(인수가액 10%) 반환소송에 대비한 ‘명분쌓기용’이라는 의구심이 크다.

이 회장은 아시아나 매각문제를 두고 올해 정몽규 HDC현산 회장과 두 차례 만났다. 이 회장은 지난 3일 “지금의 먹구름이 걷히면 항공산업이 어둡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HDC현산에 인수를 위한 마지막 호소를 하기도 했다. 아시아나 매각 과정에서 이 회장의 역할이 컸던만큼, 그가 물러나면 아시아나 매각도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에서는 이 회장이 연임해 최대 현안인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포함해 남은 구조조정 작업을 직접 마무리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금융권 경험과 전문성을 갖추면서 현 정부와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대기업 구조조정 전담하는 산은의 회장은 업무 강도가 세고, 이해관계가 복잡해 공격을 받는 경우도 많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얘기다.

실제 금융공공기관장의 후임 인선을 두고 전·현직 고위 관료는 물론 민간 금융사 인사까지 거론되지만 산은은 조용한 편이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이나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 관료가 잠재적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정도다.

이 회장이 차기 은행연합회장 자리로 옮길 수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현재로선 거취에 대한 구체적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 회장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정부 요직에 기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회장은 문재인 정부의 첫 금융위원장으로 하마평이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 6월 온라인 브리핑에서 “9월 초 임기까지 미련없이 최선을 다하고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이달 안으로 아시아나 매각문제를 최대한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당국은 임명권자인 청와대 의중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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