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폐지 줍는 노인 175만명…쓰레기 뒤져 한달에 10만원 벌이

유현욱 기자I 2017.09.01 06:30:00

새벽 4시면 거리 나서 밤새 쌓인 쓰레기 뒤져 폐지 수거
더워도, 비가 와도 폐지 줍기 걱정은 마찬가지
자원순환사회연대, 노인 약 175만명 거리 내몰려

여든이 코 앞인 동모(77) 할머니가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강북구의 한 거리에서 폐지 등을 쌓은 손수레를 밀고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연일 찜통더위에 힘들었는데 이젠 날이 좀 선선해지려니 비가 내려 말썽이야….”

서울 강북구 미아동의 한 고물상 앞. 허리가 30도쯤 굽은 동모(77) 할머니는 “아침에 눈 뜨면 뼈마디가 쑤시지만 이렇게라도 용돈 벌이를 해야지 별수 있느냐”고 말했다. 24절기 중 여름이 가고 가을에 들어선다는 처서(處暑)를 지나면서 한여름 찜통더위는 물러갔지만 습도가 높은 탓인지 할머니의 등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할머니의 일과는 동트기 전인 오전 4시부터 시작된다. 어스름이 깔린 거리 곳곳을 3시간여 동안 돌며 간밤에 내놓은 쓰레기 더미를 뒤져 박스 상자와 병, 각종 캔을 골라 수레에 싣는다. 손수레에 가득 실린 재활용품을 고물상에 넘긴 뒤 손에 쥔 돈은 4500원. 할머니는 “총각을 만난 덕분인지 사장이 평소보다 잘 쳐 준 것 같다”며 웃었다.

빈 손수레를 끌고 다시 거리로 나선 할머니는 인근 단골가게들을 훑기 시작했다.

한 중국요리점 앞에 멈춰 서더니 한참을 서성였다. “남루한 행색으로 영업하는 가게에 들어가기 민망하다”고 했다. 할머니가 온 것을 알아 차린 중국요리점 주인이 선뜻 창고문을 열어줬다.

재활용품뿐만 아니라 온갖 잡동사니들도 죄다 쓸어다 실었다. “이렇게 챙겨주는 것도 고마운데 돈 되는 것만 골라 갖고 갈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는 “보기엔 마구잡이로 싣는 것 같아도 요령이 필요하다”며 “최대한 부피를 줄여서 많이 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굽은 허리를 더 깊숙이 숙여 상자를 하나씩 펼친 뒤 차곡차곡 포개 쌓았다. 1시간쯤 지나자 빈 수레가 제법 채워졌다.

키 140㎝ 중반·몸무게 50㎏ 안팎인 자그마한 체구에도 할머니는 손수레를 능숙하게 밀었다. 기자가 잠깐 넘겨받았다. 힘껏 밀어보고 끌어도 봤지만 ‘끄는 것인지, 끌려가는 것인지’ 정도로 무겁다.

8년째 폐지를 주워 온 동모(77) 할머니의 거친 손 (사진=유현욱 기자)
“속도가 붙는 내리막이 더 위험해.” 낑낑대는 모습을 불안한 듯 지켜보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손수레를 다시 뺏어갔다.

차도를 오가면서도 시선은 주변 쓰레기 더미를 향했다. “차도는 최대한 피해 다니지만 어쩔 수 없을 때가 잦아. 건널목을 지날 때는 사고 날까 무섭지.”

목장갑이라도 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손이 굼떠 속도가 더뎌진다”며 맨손으로 쓰레기 봉투를 휘저었다. 필요한 것들을 꺼낸 뒤엔 테이프로 감쪽같이 다시 싸맸다. 할머니는 “욕심 많은 노인네들이 폐지 주울 줄만 알지 뒤처리를 하지 않아 욕을 먹곤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지나가자 재건축 현장 인부들이 “이것도 챙겨가시라”며 상자 더미를 건네기도 했다.

늦은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은 뒤 창고에서 깨끗이 말린 캔을 한 움큼 꺼내 왔다. 알루미늄 캔은 폐지보다 값을 더 쳐준다. 다시 고물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집에서 고물상까지 거리는 1㎞ 남짓이지만 골목골목 다니느라 1시간가량 걸렸다.

이런 식으로 많게는 하루 세 번(오전 7시와 낮 12시, 오후 6시) 고물상을 오간다.

손수레째 무게를 다니 92㎏, 고철을 덜어내 다시 재자 84㎏이 나왔다. 손수레 자체 무게만 37㎏이다. 총 55kg의 폐지와 고철 값으로 1만 500원이 할머니 손에 쥐어졌다.

“뉴스를 보니 살림살이가 자꾸 어려워진다고들 하는데 폐지 줍는 이들 중엔 한창때인 중년들도 있더라”고 귀띔한 할머니는 “젊어서인지 손도 발도 빨라 돈 되는 것은 다 걷어 가 버린다”고 토로했다.

매일 이렇게 폐지 줍는 일로 버는 돈은 한 달에 10만원 가량. 자식들이 주는 용돈 10여 만원을 보태 근근이 생활한다.

학교 문턱은 밟아보지도 못해 배운 것도 없고 마땅한 기술도 없어 손수레를 빌려 시작한 고된 삶은 벌써 8년 째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 따르면 할머니처럼 폐지를 줍는 노인의 수는 전국에 약 175만명으로 추정된다. 현재 만 65세 이상 고령자수 707만명(통계청) 대비 25% 수준이다.
동모(77) 할머니가 서울 강북구의 한 거리에 내놓은 쓰레기 봉투 속에서 종이붙이를 골라내고 있다. (사진=유현욱 기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