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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투표 당선] ②구의원 나눠먹는 서울시당..민심보다 '당심'

조진영 기자I 2018.02.13 06:00:00

공천만 받으면 당선..본 선거 안치러도 돼
왜곡된 중선거구제..양대정당 '적대적 상생'
박터지는 3인선거구..군소후보 당선가능성 낮아

6.13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등록이 13일부터 시작되며 120일 간의 지방선거가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특정 정당과 특정인을 중심으로 지방의회 권력독점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를 치르지 않고 당선되는 ‘무투표 당선’ 사례는 무풍지대에 있는 기초의회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이데일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역대 무투표당선자 명부를 받아 무투표 당선 양상을 전수분석했다.[편집자주]

[이데일리 신태현 기자]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관위에서 관계자들이 외벽에 ‘지방선거는 나와 이웃, 우리 아이들을 위한 동네 민주주의의 출발점입니다’ 등이 적힌 대형 현수막을 게시하고 있다
[이데일리 조진영 기자] 서울 은평구에 사는 35살 학원강사 박모씨는 정치 지망생이다. 그는 앞선 두 차례의 총선 당시 선거캠프에서 일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군소정당 후보로 구의원에 도전하려던 박 씨는 지난 선거결과를 살펴보다 고민에 빠졌다. 출마 희망지역의 현역의원 모두 무투표로 당선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서울 무투표 당선 구의원, 대구보다 많아

서울지역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고 ‘뺏지’를 다는 구의원들이 늘고 있다. 모두 거대 양당 후보들이다. 무투표 당선 지역에서 공천은 곧 당선을 의미한다. 구의원들이 민심보다 당심(黨心)을 바라봐야하는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투표할 기회마저 박탈당하고 있다.

이데일리가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인 명부를 전수 분석한 결과, 지난 2014년 기초의회(시·군·구) 의원(지역구) 선거 결과 무투표 당선 비율이 가장 높았던 지역은 서울(6.0%)이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지지세가 압도적인 대구의 구의회에서 무투표 당선자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경남(5.8%) 경북(5.7%)보다 높다.

[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2014년 지방선거 서울 은평구의원 출마자 대비 무투표당선자 현황
박 씨가 출마를 고민하고 있는 은평구는 서울에서도 가장 무투표 당선자가 많은 곳이다. 은평구의회 의원 19명 중 지역구 의원은 17명으로 이 중 6명이 무투표 당선자다. 은평구가·나·다선거구 3곳 모두 2인선거구인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새누리당 후보가 선거구별로 1명씩 출마해 무혈입성했다. 거대 정당의 기세에 다른 정당은 후보를 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는 “직장이 있는 마포구에서 출마할까 생각해봤지만 지난 선거 결과를 확인해보고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사정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양대 정당은 가선거구와 나선거구에서 각각 후보를 1명씩 내 의석을 양분했다. 다른 후보의 도전은 없었다. 강서구, 구로구, 서대문구, 성북구, 송파구, 양천구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구의원 무투표 당선자, 2명→22명 급증

서울에서 무투표 당선이 늘어나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지역주의가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영남은 자유한국당 계열이, 호남은 더불어민주당 계열이 장악하고 있지만 서울은 상대적으로 정파색이 옅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6년부터 기초의원 선거는 한 지역구에서 2~4명을 당선시키는 중선거구제가 실시됐다. 1등을 하지 않아도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후보들이 경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최근 구의원 선거에서는 경쟁을 찾아보기 어렵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존재를 찾아볼 수 없었던 서울지역 구의원(지역구) 무투표 당선자는 2010년 2명에서 2014년 22명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한 중선거구제 도입 취지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다.

중선거구제와 서울이라는 조건에도 양당이 구의회를 독식하는 이유는 구의원 선거구를 거대 정당이 결정하는 구조기 때문이다. 서울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확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하면 시의원들이 의결한다. 거대 정당의 입장에서는 가급적 2인선거구를 만들어 의석을 나누고 싶어한다. 3등이나 4등이 당선되는 선거구가 많아지면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의 목소리가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구의원 선거 당시 2인선거구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후보만 당선됐다.
2014년 지방선거 서울지역 구의원(지역구) 무투표 당선자 명단. 2인 선거구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각각 한석씩 차지했다(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터지는 3인선거구..“3등도 어려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 정치 신인들은 3인선거구를 공략한다. 양대 정당에 1등과 2등을 내주더라도 3등을 하면 구의회에 입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약한 고리’를 공략하려는 출마자들이 대거 몰려들 경우 10% 초반대 득표율로 3등 당선이 가능하다. 지난 선거에서 10명이 몰린 금천구나 선거구는 11.02%를 얻은 무소속 후보가 3등으로 당선됐다. 4등 후보(10.75%)와 불과 0.27%(79표) 차이였다.

3인선거구라는 문틈이 열려있지만 군소후보들이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거대 양당이 공천을 2명씩 해 3등 자리마저 노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쟁률은 더 치솟는다. 지난 선거 당시 서울지역 구의원 선거구 159곳 중 3인선거구는 48곳이었는데 전체 경쟁률은 2.16대 1이었다. 2인선거구(2.01대 1)보다 높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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