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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N 리뷰]담백한 눈물이 주는 따스함 '웨딩드레스'

김용운 기자I 2010.01.13 16:34:30
▲ 영화 웨딩드레스의 한 장면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영화 ‘웨딩드레스’는 죽음을 소재로 했다. 위암에 걸린 엄마와 그녀의 딸이 주인공이다. 그러나 ‘웨딩드레스’는 극적이지 않고 담담하다. 연출을 맡은 권형진 감독은 죽음을 맞이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을 소소하고 세심하게 담았다.

‘웨딩드레스’와 같은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가을 개봉해 200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은 ‘애자’ 역시 엄마의 죽음을 겪는 딸의 모습을 담았다. 하지만 ‘애자’는 애증으로 얽힌 삶의 동반자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담았다. 이미 성인이 된 딸과 예순을 넘은 엄마와의 관계를 그려서다. 이 지점에서 ‘웨딩드레스’와 ‘애자’는 크게 다르다. ‘웨딩드레스’의 엄마는 젊고 딸은 어리다.

어린 딸을 홀로 두고 세상을 떠야 하는 엄마의 심경은 생각만으로도 안타깝다. 엄마와 10년도 같이 살지 못하고 영영 이별해야 하는 딸의 처지 역시 눈시울을 시큰거리게 한다. 권 감독은 관객의 눈시울을 점층법으로 자극한다. 그와 동시에 모녀 주변에 평범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을 통해 사람의 온정을 전한다. 그래서 ‘웨딩드레스’는 체온이 식어가는 죽음을 담았지만 살아가는 이들이 따뜻함을 전하는 영화기도 하다.

‘웨딩드레스’는 슬픔을 담백하게 담는다. 동생의 위암 선고를 받았다는 말에 오빠는 묵묵히 운전 하다 차를 멈추고 잠시 길가에 주저앉는다. 감독은 오빠의 눈물을 클로즈업 하지 않고 가로등 불빛 아래 고개를 숙인 오빠의 모습을 멀찍이서 비출 뿐이다.

물론 엄마의 죽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딸의 눈망울은 그 자체가 감정의 격류를 만든다. 하지만 권 감독은 어린 딸의 눈물을 가지고 통곡의 강을 만들지 않는다. 딸과의 이별을 앞둔 엄마도 꿋꿋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삶을 정리한다. 딸과 엄마의 하루는 그래서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둘의 평온함이 얼마나 큰 고통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감독은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관객들이 넌지시 짐작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때문에 ‘웨딩드레스’는 충혈 된 눈에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가슴에서 솟아오는 먹먹함이 눈물을 만든다. 맑게 정화된 눈물이다. 그 눈물은 아이를 낳았을 때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흘릴 눈물과 성분이 같다.

처음부터 눈에 보이는 스토리와 담담한 전개는 일견 지루함을 준다. 영화의 단점이다. 간을 하지 않은 죽처럼 심심하기도 하다. 그러나 담담하고 순순한 것들 중에 몸에 나쁜 것은 드물다. 엄마 역의 송윤아와 딸 역의 김향기를 비롯한 배우들은 호연이 아니라 그저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감정의 과잉을 경계했고 슬픔의 깊이를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엄마의 손을 잡기 쑥스러운 딸이나 딸과의 포옹이 오래되었던 엄마라면, 그리고 결혼을 앞둔 모녀지간이라면 ‘웨딩드레스’는 한결 특별한 영화로 남을 것이다. 전체 관람가 1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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