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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읽는증시]일베 日구매운동이 성공하려면

전재욱 기자I 2019.08.03 08:00:00

불매운동보다 강한 명분 필요한 구매운동
한인사회 강타한 바이블랙 운동 `인종차별 철폐`
1997년 `국산 애용운동` 환란 극복 물결
일제 불매운동에 대항할 구매운동 명분은?

2일 오후 부산 동구 한 식당에 일본인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한국인 주부가 1991년 흑인 소녀를 권총으로 살해했다. 미국 로스앤젤러스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두순자씨가 매장 손님 `라타샤 할린스`를 도둑으로 오인해 발생한 비극이었다. 그는 재판에 넘겨졌지만 실형을 피하고 풀려났다. 미 흑인 사회가 들끓었다. 곧 ‘바이 블랙(BUY BLACK)’ 운동이 전개됐다. 흑인 상점을 매출을 올려주자는 것이다. 한인 상점 불매 운동에서 출발한 움직임은 이렇게 진화했다.

구매 운동은 불매 운동과 한 끗 차이 같지만 구분된다. ‘안 하는’ 것도 어차피 무언가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구매 운동은 불매 운동보다 상위 개념일 테다. 그러므로 전자가 후자보다 적극적인 행위다. 적극적인 행위가 힘을 받으려면 명분이 분명해야 한다. 두순자 사건 이후 ‘바이 블랙’ 물결이 일고, 이듬해 `LA 폭동`이 일어난 데는 ‘인종 차별’을 극복하려는 명분이 강했기 때문이다.

표적이 다르니 목적도 다르다. 구매 운동은 ‘띄우기’에, 불매 운동은 ‘누르기’에 초점에 맞춰진다. 한인을 누른다고 흑인이 뜨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가 일본 제품을 불매한다고 해서 한국 제품 판매가 알아서 늘지 않는다. 한국 제품을 띄우려면 직접 구매하는 게 즉효다.

1997년 한국에서 일어난 구매 운동은 이런 이유에서 힘을 받았다. ‘환란(換亂) 극복’이라는 대명분은 당시 나라를 관통했다. 경영을 허투루 해온 부실기업이지만, 미워도 살리고 보자는 데 국민 정서가 모였다. 그해 기아살리기 범국민운동연합이 출범했다. 이 모임의 대표 김지길 목사는 “기아차(000270) 구매운동을 벌이고, 제일은행에 통장을 개설하는 운동을 펼 것”(연합뉴스 그해 7월21일 치)이라고 했다. 기아의 주거래 은행 제일은행에 돈을 몰아줘서, 회사에 유동성을 공급하려는 취지였다.

그해 가을 `쌍방울(102280) 제품 구매` 운동도 마찬가지였다. 10월6일 쌍방울 레이더스와 삼성 라이온즈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모인 자발적인 시민운동이 출발이었다. 전북 향토기업 쌍방울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지역 중심으로 일어난 물결이었다. 힘들기는 광주 기반 해태도 마찬가지였다. 해태 타이거즈 야구 선수들은 경기장 밖에서 “해태 제품을 구매해달라”고 호소했다. (해태) 껌값이 모여 그해 추운 겨울을 녹였다.

당시 일었던 국산 구매운동은 대상을 망라하고 전국으로 확산했다. 물결이 거셌는지 미국과 유럽연합 등 외국에서 1998년 1월 한국에 통상 압박을 넣었다. 한국산 구매 운동을 거꾸로 읽으면 `외국산 배격 운동`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래도 대세는 꺾이지 않았다. 재외국민과 동포도 손을 보탰다. 그 무렵 미국 워싱턴 한인연합회는 `모국경제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하고 한국산 구매운동을 폈다.

구매 운동은 성공하지 못했다. 기아는 부도를 맞았고, 쌍방울 야구단은 해산했으며,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받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실패한 구매운동도 아니었다. 이후 펼쳐진 대대적인 `금 모으기` 운동은 구매 운동을 동력으로 삼았다. 이로써 확보한 외화는 IMF 체제를 벗어나는 발판이 됐다. 쌍방울 구매 운동은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야구 서포터즈 `포레버 레이더스`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 사회 일각에서 일본 제품 구매 운동이 일고 있다. 일간베스트(일베) 회원이 주축이다. 일본 수출규제에 반발한 일제 불매 운동에 대한 반작용이다. 쉽게 말하면 일본을 띄우자는 것이다. 구매 운동은 불매 운동보다 동력을 얻기 더 어려웠던 게 앞서 사례에서 얻은 결과다. 이런 명분을 내세우는 일제 구매 운동이 성공할지, 적어도 훗날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을지는 의문, 아니 상식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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