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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소급입법 남발…"이래서 정부정책 믿겠나"

하지나 기자I 2020.10.19 05:32:14

정부 연내 집단소송제 추진…소급입법 가능성도
재계 "행정처벌에 민·형사처벌까지…과거 행위로 처벌, 위헌 "
기존 임대사업자 혜택 폐지…임대차보호법도 소급 적용
"정부 정책 신뢰해서 결정헀는데…" 정책효과 반감 지적도

[이데일리 하지나 신민준 기자] 민간임대주택특별법,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이어 집단소송법에 이르기까지 최근 정부가 정책적 목적을 앞세운 소급 입법을 남발하면서 논란이 거세다. 당장 위헌 논란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정책 신뢰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재계, 집단소송제 소급적용 ‘촉각’…“잦은 소송, 기업 고사할 것”

법무부는 지난달 23일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법제처와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이르면 연말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집단소송제는 피해자 중 일부가 제기한 소송으로 모든 피해자가 함께 구제받는 제도다. 그간 주가 조작이나 허위 공시 등 증권 분야에만 도입됐었다. 하지만 최근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으로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집단소송제 뿐만 아니라 이 법의 소급적용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소급적용이 허용되면 과거 피해에 대해서도 집단구제가 가능해 소비자 구제 효과는 커질 수 있겠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집단소송을 노린 브로커나 블랙컨슈머가 난립할 수 있고 기업도 잦은 소송에 시달려 기업 활동에 집중할 수 없다. 특히 대기업에 비해 법적 대응 능력이 약한 중견중소기업은 잦은 소송으로 기업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강화 조치라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과거 사건까지 배상해야 하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소송 대응 여력이 부족한 기업들은 고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거의 행위를 새로 만든 법률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 원칙을 거스른다는 것이다. 헌법 제13조 2항은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헌법의 불소급 원칙을 뒤집는 행위”라며“공정 경제 3법에 더해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도입하면 한 사건에 행정처벌에 더해 형사처벌, 민사처벌을 모두 적용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행정과 형사처벌 위주인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서 법률 체계에도 맞지 않다”며 “기업이 잘못하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이렇게 모든 처벌방법을 동원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임대차3법 반대모임과 행동하는 자유시민 관계자들이 임대차3법 헌법소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뢰보호 원칙 위배”…정책 효과 반감 우려


기존 임대사업자 혜택을 폐지하는 민간임대주택특별법과 기존 임대차계약까지 적용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경우 이미 법 시행이 이뤄지고 있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7·10 대책에서 정부는 4년 단기임대와 8년 장기임대 중 아파트 매입 임대 유형을 폐지키로 결정했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주택의 세제 혜택을 악용, 시장을 교란시켜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2+2년 계약갱신청구권’과 ‘5%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역시 법 개정에 따른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막고자 적용 대상을 기존 임대차 계약까지로 확대했다.

시장에서 소급입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부진정소급입법’에 해당하는 것으로 위헌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과거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새로 바뀐 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여전히 법적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대사업자는 정부의 정책을 신뢰해 자신의 행동을 결정했는데 정부가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기 때문이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위헌 판정은 쉽지 않을 수 있지만 신뢰보호의 원칙 위배라는 법리상 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정부가 이처럼 법규나 정책을 갑자기 뒤집어버렸을 때 구제 수단이 미미하다는 점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역시 집값 안정이라는 공익성 측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 사생활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과도한 소급입법은 예측가능성과 정책신뢰성을 훼손하면서 향후 정책 효과를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의 경우 정책 시그널만으로도 움직일 정도로 심리가 크게 작용하는 곳”이라면서 “그럼에도 23차례에 이르는 부동산 대책이 사실상 실패로 끝난데는 정책신뢰성이 부족했던 원인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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