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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탐구생활] 공룡여당 민주당 vs 땅콩야당 통합당

김성곤 기자I 2020.05.06 06:00:00

21대 국회 여대야소 시대 개막…180도 달라진 정치지형
민주당, 전국단위 선거 4연승…무소불위의 막강 파워 과시
통합당, 수도권 대참패로 몰락…수습은커녕 자중지란 연속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인영 원내대표, 이해찬, 박주민 최고위원.(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오는 30일 21대 국회가 개원한다. ‘여대야소(與大野小) 시대’의 개막이다. 여야 정치지형은 180도 달라졌다. 한때 유행한 보수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은 사라졌다. 오히려 진보진영의 과속질주가 걱정될 정도다. 21대 총선 직전만 해도 진보 압승을 확신한 이는 드물었다. 더구나 역대 총선에서 여론조사와 선거 결과는 늘 불일치했다. 총선은 투표함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며 모두 조심스러워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과반을 다짐했던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원내 1당 경쟁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민주당은 특히 총선→대선→지방선거→총선으로 이어지는 전국 단위 선거 4연승을 달성했다. 지역구 의석은 민주당 163석 vs 통합당 84석으로 더블 스코어다. 비례 위성정당까지 포함하면 민주당·시민당 180석 vs 통합당·한국당 103석이다. 슈퍼 공룡여당의 탄생이다. 게다가 정의당(6석), 열린민주당(3석), 여권 성향 무소속(1석)을 포함하면 진보진영 전체 의석은 무려 190석이다. 통합당은 개헌 저지선보다 3석 많은 103석을 확보했다. 87년 체제 이후 보수정당이 이 정도로 폭망한 적은 없다. 땅콩야당의 탄생이다.

◇‘180석’ 민주당의 무소불위 파워…“개헌 제외하고 모든 게 가능”

민주당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상황이다. 21대 총선에서 ‘꿈의 의석’을 얻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이 역대 총선에서 거둔 최고 성적표다. 내용적으로도 완벽하다. 민심의 바로미터이자 총선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전체 121석 중 103석을 싹쓸이했다.(서울 49석 중 41석·경기 59석 중 51석·인천 13석 중 11석). 텃밭인 호남에서도 4년 전과 달리 사실상 전승을 거뒀다. 보수세가 강한 충청과 강원에서도 대약진을 이뤘다. 영남의 경우 20대 총선보다 의석수는 줄었지만 득표율 자체는 4년 전보다 개선됐다. 총선→대선→지방선거→총선으로 이어지는 연전연승으로, 현재로서는 차기 대선 재집권이라는 목표 역시 사실상 예약해 놓은 상황이다.

국회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여야가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막판에는 쪽수가 많은 곳이 이긴다. 바로 의석수의 힘이다. 이는 선거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한 권리다. 180석 민주당은 무소불위의 힘을 갖게 됐다. 쉬운 말로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게 가능하다. 개헌 역시 야권에서 10여석 이상의 이탈표만 나온다면 불가능한 구조도 아니다. 또 여야 합의를 강조하는 이른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제도도 무용지물이 됐다. 지난 연말 선거제 개편이나 공수처 법안 처리 때처럼 야당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21대 국회에서는 민주당이 마음만 먹으면 상임위→법사위→본회의를 일사천리로 거치며 모든 법안의 처리가 가능하다. 유일한 걸림돌은 야당의 반대가 아니다. 민주당의 독주를 여론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기라는 점이다.

◇민주당, 17대 국회 열린우리당의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민주당은 ‘표정관리’ 모드다. 크게 웃고 싶은데 맘놓고 웃을 수조차 없다. 과거의 뼈아픈 경험 때문이다. 이해찬 대표가 “열린우리당의 아픔을 우리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한 게 대표적이다. ‘열린우리당 반면교사’ 담론은 민주당 안팎에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열린우리당은 2004년 17대 총선에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로 과반(152석)을 얻었다. 이후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개혁법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한나라당의 반대와 내부 계파갈등으로 무너졌다. 이 과정에서 ‘무질서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108명의 초선 의원은 ‘백팔번뇌’ 또는 ‘탄돌이’라는 조롱에 시달렸다. 총선 이후 모든 재보선에서 연패한 것은 물론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백년정당을 표방했지만 공중분해의 길을 걸었고 2007년 대선마저 참패했다. ‘민생고 해결’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점을 도외시하고 이념투쟁을 지나치게 앞세운 결과였다.

민주당의 고민은 과연 180석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똑같은 칼이라도 강도나 요리사 중 누가 쓰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민주당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의 기본 원리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절대다수 의석을 얻었다. 이는 딜레마다. 야당 반대에도 개혁과제를 추진하는 물리적 힘을 과시할 것인가 아니면 대화와 협상으로 야당을 설득하는 협치를 보여줄 것인가. 이는 총선 결과를 ‘민주당 재신임’ 또는 ‘통합당 불신임’ 중 어느 쪽으로 보느냐와 연관된 문제다. 다시 말해 180석은 독이 든 성배다. 총선 압승에도 민주당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개혁을 밀어붙이면 정치적 반대층이 결사 저지에 나설 것이다. 그렇다고 머뭇거리면 열성 지지층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표면적으로 복잡해도 핵심은 간단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몰려올 거대한 경제적 충격파에 민주당이 어떤 실력을 보여줄지가 최대 변수다. 게다가 한반도 평화에서 가시적 성과를 낸다면 적어도 ‘코돌이’라는 오명은 쓰지 않을 것이다.

◇통합당의 자중지란과 사분오열…수도권 참패로 영남 자민련 축소

지난 4월 28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던 미래통합당 제1차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원 부족으로 열리지 못하자 정우택 상임전국위원회 의장이 회의장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통합당의 현 상황은 참담하다. 총선을 거치며 ‘영남 자민련’으로 영토가 축소됐다. 총선 참패 수습은 고사하고 자중지란의 연속이다. 총선 결과는 그야말로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역대 최악의 참패다. 17대 총선 당시 탄핵 역풍과 20대 총선 당시 공천파동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적어도 120석 이상은 얻었다. 통합당은 아무리 망해도 80석 안팎에서 시작하는 정당이다. 영남 60석 안팎+비례 20석 안팎이 최소한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영남 전체 65석 중 56석을, 비례 47석 중 19석을 얻어 총 75석이다. 총 의석수가 103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지역구 253석 중 영남(65석)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188석)에서 고작 28석을 얻었다. 호남·제주·세종·대전은 0석이다. 특히 수도권은 고작 16석(서울 8·경기 7·인천 1)이다. 나머지 충남북 8석, 강원 4석으로 비영남 지역구 의석은 28석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권 16석 참패는 너무나 뼈아프다. 20대 총선에서 수도권 전체 122석 중 35석(서울 12·인천 4·경기 19)을 얻은 것보다 19석이 더 줄었다. 수도권이 총선 민심의 바로미터라는 점을 고려하면 통합당의 총선 캠페인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위기는 따로 있다. 통합당은 총선에서 왜 참패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지역구 전체 득표율은 ‘민주당 49% vs 통합당 41%’로 별 차이가 없다는 한가한 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당 일각의 사전투표 부정선거 의혹도 마이너스 요인이다. 대한민국의 선거관리 능력은 △공정성 △정확성 △신속성의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는 87년 체제 이후 30여년을 거치며 사실상 완성단계라는 점에서 선거불복으로 볼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출범을 둘러싼 논란도 목불인견이다. 황교안 전 대표의 사퇴 이후 지도부 공백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뚜렷한 해법이 없다.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은 가능한데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수용불가라는 당 중진들의 반발 때문이다. 통합당이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해못할 상황이다.

◇보수궤멸론 대유행에도 시간 허비…통합당 완전 몰락 막아야

통합당의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크게 보면 3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모두 날려버렸다. △2016년 4월 20대 총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2017년 5월 대선 △2018년 6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이후 보수의 전면적인 쇄신과 체질 개선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때뿐이었다. 통합당은 위기의 근원적 수습보다는 땜질식 처방을 선택했다. 20대 총선 참패 이후에도 여전히 친박이 당권을 장악했다. 국정농단·탄핵·대선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는 촛불민심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지방선거 참패 이후 보수궤멸론이 대유행을 했지만 21대 총선까지 1년 6개월의 시간만 허비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대안 세력의 이미지를 심기보다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총선 막판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50%대 중반을 유지한 것은 물론 세계가 대한민국을 코로나 방역 모범국이라고 칭찬했지만 통합당은 “바닥 민심은 다르다”고 강변할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복이 있다”는 세간의 우스개만 증명하고 말았다. 총선 이후에도 △공천잡음 △코로나 블랙홀 △세월호 막말 등을 참패의 핑계로 내세웠다. 분명한 건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가수 김건모 말고는 없다는 사실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정치권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표현이다. 통합당의 현 상황은 2008년 18대 총선 참패 당시 통합민주당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민주당은 지역구 66석 비례 15석 등 총 81석을 얻었다. 개헌 저지선이 100석에도 못미치는 의석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 참패, 2007년 대선 참패에 이어 18대 총선에서마저 몰락하며 존립마저 위태로운 불임정당으로 내몰렸다. 이후 기나긴 시간 동안 당 쇄신과 회복과정을 거쳐 대선에서 다시 정권을 되찾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렸다. 만신창이가 돼버린 통합당이 벤치마킹해야 할 대목이다. 땅콩야당으로 전락한 통합당이 21대 국회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도 관심사다. 과거와 같이 대안없는 무조건적인 반대, 걸핏하면 장외투쟁과 삭발, ‘라떼는 말이야’로 상징되는 꼰대 이미지로서는 모든 게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래도 통합당의 완전 몰락은 막아야 한다. 민주당이야 미소지을 수도 있겠지만 나라 전체로는 불행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 듯이 건강한 보수야당이 존재해야 한국정치도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이 당으로는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이뤄낼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이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 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파괴가 필요하다. 깨끗하게 해체해야 한다.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새로 시작해야 한다.”(2019년 11월 17일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세연 총선 불출마 선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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