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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탁의 시대]생활속 안전장치 '복지형 신탁'

장순원 기자I 2020.10.03 08:30:00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신탁은 정보라는 인식에서 이젠 점차 보편화된 상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신탁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자산가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재산이 있어야 신탁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그러나 신탁은 상속 목적의 유언대용신탁뿐 아니라 최근에는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재산보호 기능까지 등 역할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장애인, 아동,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은 가족, 친지, 지인 등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피해를 보기도 한다. 이러한 취약계층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신탁제도는 다양하게 구현되고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에서는 금융과 복지를 결합해 더 많은 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신탁 활용법을 연구·개발 하고 있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홀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장애인이나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장애인, 부모 이혼으로 양육비지원을 받아야 하는 미성년자,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범죄피해자, 또는 사회적 피해를 유발시킨 특정 기업의 보상금 관리·지급 등 사회안전망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신탁이 최일선에서 복지금융 역할을 담당해 나갈 것이다.

그룹홈 지킴이 신탁

우리 트러스트센터는 2018년 4월 서울시 사회복지공익법센터와 ‘장애인 재산보호를 위한 신탁 운용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에 거주하는 70여 명의 금전재산에 대해 신탁계약을 맺었다.

그룹홈에서 살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통장을 관리하던 시설장이 발달장애인의 예금과 적금을 횡령하는 일이 생겼다. 발달장애인들은 매달 받는 수급비 등 일상적 자금 뿐 아니라 향후 자립 생활을 대비하여 임대차보증금 등으로 쓰기 위해 모아 놓은 목돈도 있었다. 피해를 입은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으로 사회복지기관과 금융기관이 협업하여 신탁을 통해 자금 지급 시 이중의 잠금장치를 설정해 횡령 등의 위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그곳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일상적인 용도의 자금을 제외하고 은행이 수탁자로서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복지법인 사무국은 신탁관리인으로서 지킴이 역할을 맡았다. 재산관리 능력이 낮은 사람들의 재산을 투명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신탁이 기여한 사례이다.

양육비지원 신탁

매년 11만 건 이상 이혼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양육비라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2018년 여성가족부의 한부모 가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거나 일시 지급받은 가정은 16.8%에 불과하다. 73.1%는 전혀 받지 못했고, 5.7%는 초기엔 지급받다가 중단됐다. 정부에서는 양육비 분쟁을 예방하고 양육비를 제 때 지급하도록 그 실행을 촉구하기 위해 2015년 3월 여성가족부 산하에 양육비이행관리원을 개설하였다. 이곳에서는 미성년 자녀의 양육비 청구와 이행 확보 지원 등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며 법률지원도 담당한다. 양육비 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제재 조치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자녀 양육비 이행과 관련한 다양한 교육 및 홍보 활동도 하고 있다.

양육비 지급 방법의 하나로, ‘양육비지원신탁’을 활용할 수 있다. 양육비 지급 의무자인 부 또는 모가 위탁자가 되어 ‘양육비지원신탁’을 계약하고 양육비 자금은 미성년자 앞으로 직접 입금되는 방식이다. 늘어가는 이혼으로 사회구조가 변해가고, 그 속에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미성년 자녀가 건강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가고 있다. 밀린 양육비를 지급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이혼한 신탁계약을 전 배우자에게 돈이 들어가는 것 때문이라는 핑계를 사전에 차단하고 자녀에게 직접 지급되는 통해 조금이나마 양육비가 지체되는 상황을 막고자 한다.

범죄피해자 구조금지원 신탁

아동,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 뿐 아니라 범죄 피해자들도 보호해야 한다. 법무부 산하의 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범죄 피해자들에 대한 상담, 재정적 지원 업무를 한다. 범죄로 인해 경제적 활동에 제약이 생기거나 생계가 어려운 경우, 공부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생계비나 학자금을 지원한다. 또 범죄로 다친 피해자에겐 치료비를 지원하기도 하고 장례비나 심리 치료비, 간병비도 지원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범죄 피해자 가족 가운데 75%는 월평균 소득이 200만 원 이하로 정부가 일부 지원하지만, 대부분 재원(財源)은 후원금·기부금이다. 검찰통계시스템에 의하면 2018년 총 248명에게 101억7500여만원이, 2019년에는 305건에 115억1600만원이 집행되었다.

범죄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는 구조금도 신탁을 활용해 지켜줄 수 있다. 금전 관리가 어려운 미성년자나 발달장애인 등은 범죄 피해 구조금을 지급해도 그 구조금이 그들의 피해 복구를 위한 용도로 온전히 사용되지 못하는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피해자가 구조금을 직접 정상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신탁을 활용할 수 있다.

성년의 발달장애인이 구조금을 수령할 경우에는, 적절한 성년후견인 선임과 신탁제도의 결합을 통해 좀 더 완벽한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범죄피해자 지적장애인을 위해 후견법인 ‘온율’이 후견인이 되고 하나은행에서 신탁관리를 하고 있는 사례 등을 꼽을 수 있다.

기업 보상금신탁

기업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개인 피해자들을 위한 ‘피해보상금 신탁’이 있다. 어떤 사건의 가해 기업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게 된다. 이때 피해보상금은 판결에 따라 단계별로 지급되는 경우가 있어 회사와 피해자 양측 모두 보상금을 투명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신탁은 위탁자 또는 수탁자가 파산한 경우에도 신탁된 재산이 별도로 관리될 수 있는 도산절연(도산격리) 기능이 있다. 그러므로 피해보상금을 신탁하면 피해보상금 목적으로 설정된 신탁재산은 그 목적으로만 지급·관리될 수 있다. 영미권에서도 소비자 보호 소송 후에 보상금을 보상금신탁(Compensation Trust)으로 처리하는 사례와 비슷한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배정식 센터장은…

1993년 하나은행에 입사해 현재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으로 재직 중이다. 2010년 금융권에서 처음으로 리빙트러스트를 연 뒤, 신탁의 사회적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 금융법무과정, 건국대 부동산 대학원 등을 거쳐 호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현재 금융연수원 등에서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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