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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문준용을 만나다]③ "작품 더 대담하게…해외서 '새롭다'로 평가받을 것"

오현주 기자I 2020.12.28 03:30:00

미디어아티스트 문준용 본지 단독 인터뷰
최근 폐막한 전시·작가로서 심경 등 밝혀
"연작 더 대담하게 만들어 해외발표 계획
해외선 새로운 게 경쟁력…잘될 것 기대"

작가 문준용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이데일리 본사와 금산갤러리로 장소를 옮겨가며 2시간 반여 동안 진행했다. 문 작가는 “새로운 기술·매체로 이전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표현할 수 있는가를 작업의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사진=이영훈 기자).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문준용(38)을 만났다. 무리에 섞여 있지 않은 그를 단독으로 만난 건 두 번째. 3년 반 만이다. 첫 만남은 2017년 6월 초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작업실에서였다. 당시는 아버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던 때다. 그즈음에 문 작가는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단체전을 열고 있었고, 함께 참여한 다른 작가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언론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절대 유쾌한 관심만은 아니었다. 그는 대선 때 불거진 ‘채용특혜’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본지 2017년 6월 5일자 ‘문준용 “대통령 아들? 하루살이 걱정하는 예술가일 뿐”’ 참조).

두 번째 만남은 지난 23일에 있었다. 시간만 흘렀을 뿐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여전히 그는 대통령의 아들이란 유명세를 치르고 있었고,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었으며, ‘코로나19 피해 예술인 지원금’ 논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니다. 변한 건 분명히 있다. 상황은 더 험악해졌고, 그는 예전보다 지쳐 보였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그와 관련한 얘기들과는 다른 말을 직접 들으려 한 것이 그에게 만남을 청한 목적이다. 정치인이나 보수여론과 싸우는 투사가 아닌 ‘예술가 문준용’이 하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인터뷰는 이데일리 본사와 금산갤러리로, 장소를 옮겨가며 2시간 반여 동안 진행했다. 3회에 걸쳐 게재한다.

△증강현실에서 가상인물과 실제인물이 마주치는 ‘시선’

오후 4시 30분. 원래 인터뷰 장소이던 금산갤러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개인전 전시작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애초의 계획이었으니까. 차 안에서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부모님과 통화는 자주 하느냐고. 문 작가는 “그러게 하진 못한다”고 했다. “서로 뉴스를 통해서 안부를 확인한다”고. 그러곤 혼잣말처럼 집안분위기를 탓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들이 아닌가.” 연이어 (대통령의 아들로) 가장 불편한 게 뭐냐고 물었더니, 허를 찌르는 답변이 돌아왔다. “전시장에 들어가지 못할 때”라고 했다. “시위대까지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갤러리 앞 보도는 여전히 시위대 차지였다. 전시를 보러 온 길지 않은 관람객 줄도 여전했다. 끝내 ‘전시장에 (정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문 작가를 갤러리 안에서 다시 만났다. 작품 앞에 서자 비로소 문 작가의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이번 대표작이라 할 연작 중 한 점인 ‘증강 그림자’(2020) 앞에서 전등 모양처럼 생긴 빛을 직접 들었다. 컵을 닮은 전등의 빛을 테이블 안쪽 깊숙이 여기저기 비추자 못 보던 그림자들이 하나둘 등장했다가 또 사라진다.

“빛을 비추면 안쪽에 그림자가 생긴다. 센서가 달려 있어 그림자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거다. 그 위치에 맞춰 영상은 위에서 쏘게 돼 있는데, 실제 그림자와는 다른 그림자를 내보인다. 이 전등은 마우스와 키보드 같은 도구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일부기도 하다. 여기서 바로 ‘인터랙션’이 이뤄지는데, 모든 그림자가 관람객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실제 그랬다. 그림자 인물들이 걷는 모습은 제각각인데 하나같이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란 전시명이 이제야 드러난 거다. “나도 이들을 보고 저들도 나를 본다. 가상공간에서 서로 만나는 거다. 증강현실이기 때문에 가능한 거고. 그 안에선 가상인물과 실제인물이 이렇게 시선을 마주친다.”

작가 문준용이 개인전 ‘시선 너머, 어딘가의 사이’에 내놓은 ‘증강 그림자’(2020) 앞에서 전등 모양처럼 생긴 빛을 직접 들고 작품설명을 하고 있다. 컵을 닮은 전등의 빛을 테이블 안쪽 깊숙이 여기저기 비추자 못 보던 그림자들이 하나둘 등장했다가 또 사라진다(사진=이영훈 기자).


△“작품 보고 지원금 받아도 될지 판단해줬으면”

작품설명을 듣다 보니 조금 전 이데일리 본사 회의실에서 일어서기 직전 나눴던 얘기가 떠올랐다. “인터랙션 작품은 사람들이 사용할 때 성공 여부가 보인다. 표정이나 행동으로 관람객들이 얼마나 즐거워하는가를 알 수 있는 거다. 사용성이 얼마나 높은지, 사용할 때 편한지 불편한지, 학습기간이 길지 않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궁극적인 평가가 될 수 있다.”

그랬다. 다른 게 아니라 이 작품을 문 작가는 모두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 그의 안타까움은 거기서 출발한 셈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작품을 봐주는 거다. 아니라면 최소한 내 이력이라도 봐줬으면 한다. 보고 난다면 개인전을 해도 될 사람인지 지원금을 받아도 될 사람인지 알 수 있을 텐데. 그게 참 답답하다.”

3년 반 전 문 작가를 문래동 작업실에서 만났을 때, 그는 “팔리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과제”라고 했더랬다. 미디어아트 작품이 팔릴 수 있다는 건 관람객을 충실히 배려했다는 거니까, 인터랙션에 집중했다는 거니까. 하지만 어쩌겠나. 아직까진 말이다. 문 작가가 그토록 중시하는 인터랙션이 가상공간에서만 이뤄진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그가 작품명으로 삼은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가 섞이는, 안이 곧 밖이 되고 밖이 곧 안이 되는 그런 얘기는 증강현실에서나 가능한 건가.

작가 문준용을 만났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이데일리 본사와 금산갤러리로 장소를 옮겨가며 2시간 반여 동안 진행했다. 그중 전시장, 자신의 작품 앞에 서자 비로소 문 작가의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뉴미디어아트는 작품성으로 평가하는 데서 나아가 ‘새롭다’는 것에 경쟁력이 있다”며 “잘될 거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이영훈 기자).


그럼에도 작가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을 터. 계획이 있는가 물었다. “단기적으론 지금의 연작을 더 대담하게 만드는 거다. 그러곤 이것을 해외에 발표하는 거다. 당장이야 코로나가 막고 있지만 곧 할 거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새로운 것이라 해외에서도 인정을 해준다. 뉴미디어아트는 작품성으로 평가하는 데서 나아가 ‘새롭다’는 것에 경쟁력이 있다. 잘될 거란 기대가 있다.”

빛과 그림자라고 했다. 빛이 없다면 그림자가, 그림자가 없다면 빛이 의심을 받는다. 결국 정반대에 섰지만 결코 떨어질 수가 없는 관계란 소리다. 문 작가와 곡절 많은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전시장 밖은 여전히 소란했다. 과연 빛인지 그림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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