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손꼽히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가인 정우영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는 1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모두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위기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했다. 정부와 기업 모두 다가오는 구조조정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게 정 변호사의 충고다.
정 변호사는 1990년 중반 재정경제원 고문변호사로 금융과 부동산 실명제 관련 법률자문을 맡았고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부실 종금사 정리작업에 참여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다. 금융분야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최근까지 고강도 구조조정이 진행됐던 조선·해운 분야에서 여러 건을 자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운산업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한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는 “시장이 줄어들면 누군가(기업)는 죽어야 하는데 통상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며 특히 기업 오너를 포함해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본격적인 위기를 맞닥뜨리기 전 경쟁력을 가진 핵심 사업과 아닌 곳을 구별해 포기할 곳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룹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정 변호사는 정부를 향해서도 “구조조정의 원칙이 제대로 세워지지 않았다”며 쓴소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지금이 구조조정의 원칙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이 기준이 분명해야 지원 관련 시비도 줄고 미래 산업구조 개편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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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어려움 겪는 기업이 많아졌다.
-아직 멀었다. 지금은 정부가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자금을 빌려주는 단계다. 항공업계만 해도 여객기의 90%가 뜨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항공물류로 그나마 버티고 있다. 하반기부터는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출이 중심인 우리나라는 글로벌 경제 영향이 큰데, 나라밖은 더 어렵다. 정부가 전례 없는 규모인 135조 플러스 알파(+α) 금융안정 패키지 대책을 가동한 것만 봐도 코로나가 경제에 미친 영향력이 크다는 방증 아니겠나.
▲구조조정의 시기가 곧 온다는 얘기 같다.
-그런 시기가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정부가 40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하며 기간산업 안정기금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결국 모든 산업을 살릴 수 없다고 인정한 것 아닌가. 파급력이 큰 기간산업을 살리면 다른 작은 산업은 저절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가 섞인 것 같다.
▲지원규모가 40조원이면 충분한가.
-기금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운용주체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다만, 이런 비상시국에 대규모 기금을 운용해본 경험이 많지 않다. 다행스럽게 산업은행은 기금 운용 경험이 있고 또 금융기관 중에서는 기업논리를 이해하는 편이다.
▲지원조건 때문에 일부에선 지원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이나 보수나 자사주 취득 제한 조건이 붙긴 한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기업 운영에 영향을 줄 수단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변화되는 산업에 맞춰 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그 기업의 주식을 갖고 있지 않다면 관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을 중심으로 한 조선업 구조조정도 산업은행이 주식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산업구조 개편을 안 하면 지원한 금융채권이 휴짓조각이 될 수 있다. 자금 지원을 한 회사가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출자전환이 통례인데, 출자전환된 주식이 가치가 있으려면 시너지 있는 기업끼리의 합병 등 구조개편이 필수적이다.
▲경영권이 제약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는데.
-현재는 지원한 뒤 기업이 정상화하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 (정부는 지원금액의 15~20%를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주식연계증권이나 우선주로 지원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의결권 없는 주식이나 채권으로 이익을 회수한다는 것은 모든 기업이 잘 살아날 때 얘기다. 코로나 사태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관광관련 산업은 위축된다는 게 일관된 전망이다. 그러면 여행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을 줄이는 것은 상식의 차원이다. 꼭 줄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럴 때 대비해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이다.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기업의 본질은 돈을 버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이 살아 있어야 한다. 모든 기업인은 생리상 기업 생존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회주의 경제가 아닌 이상 시장이 줄어들면 누군가(기업)는 죽는다.
모든 산업을 보면 반드시 지켜야 할 기업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기업으로 나눌 수 있다. 해운업만 해도 해운회사, 선박투자회사, 선박이 없이 화물만 전문으로 모으는 포워드(화물운송 주선업체) 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숫자도 많다. 위기가 오면 모두 지원해달라고 한다. 현실은 모두를 살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기업이 위기를 만나면 재빨리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거나 합병을 통해 다른 기업에 빨리 붙어야 한다. 또는 자기 자신을 없애는 결단이 필요하다.
▲기업인 입장에선 쉽지 않은 선택일 것 같다.
-맞다. 하지만,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어려움을 겪던 STX그룹의 일을 잠시 한 적이 있다. 당시 금융가에서는 STX엔진 하나만 두고 다 정리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핵심 사업부를 제외하고는 다 포기해야 그룹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룹은 해체되고 말았다.
사실 모든 그룹 ‘오너’ 입장에서 계열사 하나를 포기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그룹이 더 어려워진다는 게 과거의 교훈이다.
▲본격적 구조조정을 앞둔 현재 정부의 역할은 뭔가.
-구조조정의 기준과 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기업을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처럼 금융논리만 앞세워서는 안 된다. 금융논리로 보면 위험한 기업은 모두 죽여야 하고, 그런 곳에 대출하면 배임이 된다.
그러나 산업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논리구조가 보인다. 지난 2017년 파산한 한진해운이 대표적인 예다. 한진해운은 글로벌 네트워크 산업으로 한번 무너지면 원상복구가 어려워 지원이 절실했지만 결국 지원을 받지 못해 파산했다. 네트워크 산업이 한번 무너지면 그냥 회사 한 곳 살리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돈과 땀이 들어간다. 최근 항공업계가 어려운데 국적이던 민간이던 기간 물류에 해당하는 글로벌 항공물류망을 반드시 확보해둬야 한다.
※정우영 변호사는? △1959년 서울생 △경동고, 서울대 법대 △2014~2016년 한진해운 사외이사 △2015년~ 고려대 겸임교수 △2016년~현재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자문위원회 은행분과 자문위원 △2017~2018년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위원회 설립위원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