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제당 레이싱팀을 이끌고 있는 25년차 베테랑 카레이서, 김의수를 만나 지난 25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자동차, 그리고 레이스는 언제부터 알게되었나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예전에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다. 난 기억이 없는데 4살부터 집에 있는 차를 운전하려고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단순히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것과 레이스를 좋아하거나 레이스를 한다는 건 완전 다른 이야기다. 시기적으로 보면 1980년대에 자동차를 좋아했고, 1990년대에 레이스를 알고, 카레이서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정말 우연하게 황진우 감독의 아버지이신 황운기 단장이 우승을 차지하셨던 온산 오프로드 대회부터 한국에 레이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전까지는 레이스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정말 “자동차를 가지고 경주를 해?”라고 반응을 했었다. 사실 경기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 안되는, 불가능한 일이라도 생각을 했을 정도로 무지했었다. 그래서 자동차 경주의 실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그 경기를 보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경기는 황운기 단장이 스쿠프 터보를 가지고 나와서 우승을 차지했던 걸로 기억하고, 김정수 단장이 데뷔 경기를 치렀던 경기로 기억한다. 어쨌든 그 경기를 통해서 국내에 레이스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레이스를 해야겠다는 꿈이 생겼다. 정말 즉흥적으로 정해진 꿈이었지만 꼭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자동차를 좋아하고 이제 막 카레이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는데 카레이서가 되는 방법을 알리가 있나. 그래서 각 팀과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역시 한 명의 팬과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팀들과 어느 정도 알게 된 이후 카레이서가 되는 방법을 고민하고, 질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온 팁은 레이스에 나서는 팀에 들어가라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무척 뜬구름 잡지만 지금까지도 유효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곧바로 레이싱팀을 찾아봤는데 정말 놀랍게도 울산에도 레이싱팀이 있었다. ‘울산 용마’팀이었는데 겉으로는 레이싱 팀이라는 위엄이 있으나 결국 샵 단위의 팀이었다. 그 길로 곧바로 울산 용마 팀에 찾아가 레이스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팀의 소속이 되었다. 그렇게 첫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어쨌든, 오프로드로 레이스를 처음 시작할 때 김준우, 박정룡, 김한봉, 최광년, 윤철수 등 그런 선배들이 모두 현역에서 뛰고 있을 때. 그래서 그런 대 선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레이서의 꿈을 키웠던 것 같다. 선배들의 주행과 이야기 그리고 그 팀들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배우던 시기였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나 젊은 선수들의 경우 지금은 사실 인터넷 비롯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 시절에 그런 게 없었다. 드라이빙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차량에 대한 모든 것들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눈탱이라 말하는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요령 없이 맨몸으로 부딪치는 일도 참 많았던 것 같다.
경기장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부지만 있으면 코스를 그리고 정말 열심히 달렸다. 지금 돌이켜보면 배고프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때는 배고프기 보다는 열정이 또 다른 모습으로 보여졌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 때가 더 즐겁게 탔다. 클래스를 올리면서 프로가 되면서 더 고독하고 외로워지는 것 같아서 가끔 그 시절이 그립다.
Q 온로드 레이스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되었나?
오프로드에서 활약하고 있던 90년 대 중후반, 현대자동차에서 랠리 선수를 선발한다는 이야기에 오디션에 참가했고, 그 프로그램에 선발되었다. 그런데 IMF로 인해 이 프로젝트가 보류가 되었고, 아무것도 없이 서울에 올라온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일단 용인 쪽에서 지내라고 했다. 그런데 용인에 아무런 인맥도 없는 상태에서 누구한테 의지를 하겠나. 다행히 김정수 단장의 이글 레이싱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김정수 단장이 이후 메사 라는 팀을 창단하게 되면서 팀에 공식적으로 합류하게 됐다. 당시에 대우차가 투어링B에서 로미오를 출전하며 상위권을 쓸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아반떼 DOHC를 개발하고, 현대차에서 김의수를 태워보라. 라는 식의 제안을 했다. 그리고 랠리는 조금 미루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온로드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그리고 첫 경기에 예선 1위를 하면서 이슈가 되었다.
그 시기 꿈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사실 1993년 그러니까 20대 초반, 레이스를 시작하며 가진 꿈이 ‘10년 후에는 국내 최고 클래스의 우승자가 되’혹은 연봉 ‘1억을 받는 레이서가 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가 이미 5년이 흘렀던 시기다. 어느 날 문득 ‘과연 내가 내 꿈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많은 고민을 하다가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지내니 정말 힘들었다. 노숙도 하고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다가 일본의 술집에서 일하고, 운전기사로 일하면서 일본에서 지내게 됐다.
어느 날 인디고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투어링B를 나가자’라는 것이었는데.. 엔진 길들이기 겸 테스트 주행을 하던 차에 기록이 나쁘지 않아서 곧바로 투어링 A에 출전하게 됐다. 당시에 김한봉 선배와 함께 뛰었는데, 시즌 중반 김한봉 선배가 일부 멤버가 팀을 떠나면서 갑작스럽게 팀의 주력 선수가 되었다. 그렇게 되니 정말 외롭게 되었다. 프로가 힘들다는 것이 그렇게 힘든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 고통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내 돈을 들이지 않고, 타인에게 인정 받으면서 비용을 받으면서 차를 탄다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이고 힘든 일인지 모른다. 사실 이게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런데 막상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할 수 없다. ‘누군가는 돈 내지 않고 타기만 해도 감사하다고 생각할텐데’ 혹은 ‘누군가는 꿈일텐데..’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가득 채워 아무에게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프로가 고독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
그런 시기를 보내던 중 국내에 GT 클래스가 신설되었다. 당시 오일뱅크 쪽에서 워낙 좋은 차량을 가져왔고 인디고 레이싱팀에서는 그걸 국내 기술력으로 대응하려니 쉽게 안되더라. 리타이어도 많았고 좀처럼 대응이 안됐다. 그래서 GT 규정이 바뀌면서 국내 기술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점점 성적도 좋아졌다. 그러다가 2001년 후반부터 뭔가 ‘빨라지는 방법’을 알게 되는 껍질을 깨는 시기를 맞이하고 수 경기를 연속으로 우승했다. 그리고 바랬던 10년내 국내 최고 클래스 우승을 차지하고 이후 수 년 동안 커리어를 이어갔다. 꿈을 이뤘다는 것에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서, R스타즈와 함께 손을 잡고 J-킴스앤알스타즈 레이싱 이름으로 슈퍼다이큐에 도전했다. 클래스 2에 도전하던 중 스즈카에서 현재 슈퍼레이스 이사인 김동빈 이사와 당시 CJ그룹 홍보부 부장이셨고 현 CJ대한통운 부사장이신 신동휘 부사장님이 ‘CJ레이싱 팀 창단에 합류해달라’라는 요청을 받고, 200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Q 그리고 곧바로 스톡카 레이스를 함께 준비한 것인가?
처음에는 스톡카가 아니었다. KMRC에서 WTCC 같은 GT 클래스를 만든다고 했었다. 그래서 CJ에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차량 제작을 의뢰하고 협의하던 차에 KMRC가 없어졌다. 내부 사정도 심각했고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CJ에서도 레이싱 팀 프로젝트 중단하려고 했다. 그때 회사에 ‘어차피 레이스 할 예산이라면 새로운 걸 도전하자’ 라고 제안했고, CJ에서 고민 끝에 ‘보다 저렴하면서도 즐거운, 박력 넘치는 레이스를 하자’를 테마로 스톡카 리그를 준비했다.
다른 사람이 모터스포츠를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아직 30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터스포츠라는 산업이 굴러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자신의 돈을 쓰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후원을 받거나 투자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레이스를 하는 사람들이 즐거운 게임이 아니고 경기를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는 레이스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F1보다 나스카 같이 관중 중심의 레이스가 모터스포츠 산업과 관련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경기를 보면서 내가 감정을 이입하고 같이 흥분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레이스가 가장 먼저라고 생각한다그런데 생각해보자 수억 원을 호가하는 레이스카를 가져와서 레이스를 하면 달리는 사람은 즐겁다. 하지만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사고가 없는 레이스? 과연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을까? 그러면 합리적인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호주의 로컬 레이스로 어느새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V8 슈퍼카즈가 좋은 예라 할 수 있는데 격렬하면서도 화려한 그러면서도 즐거운 레이스를 지향하는 게 맞다고 본다. 팀이 1년 예산을 고려할 때 마케팅이나 다른 활동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그냥 단순히 레이스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그 이상의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스톡카를 처음 생각했을 때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CJ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CJ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후원업체를 유치하고 이를 팀에 연결시켜줘서 조금 더 활발한 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레이스 팀을 운영한다’라는 것이 아닌 브랜드를 알리는 또 다른 홍보의 아이템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물론 팀들도 그런 자본이나 기업의 접촉이 왔을 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실력도 키워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다행히 지난 시간 동안 성장 눈에 띠게 존재했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런 자본의 투자를 받아 드리고 더 큰 규모의 운영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성장을 하면 중국, 일본은 물론 태국, 말레이시아, 두바이 등 어디든 가지 못하겠는가? 슈퍼레이스는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레이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Q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는가?
모든 남자가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첫 경험’인 것 같다. 93년 청포대 레이스 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94년 첫 챔피언에 올랐을 때가 떠오른다. 물론 이후 인디고 시절 GT에서 고생하던 기억이 나고 그 이후의 스톡카 레이스는 매 년 힘들어서 모든 시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아마 올 시즌이 되지 않을까? 팀과 시즌을 준비하며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겨움 속에서 포디엄에 올랐던 지난 경기도 정말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해설 활동이 즐겁다. 레이스를 하는 입장에서 그들의 레이스를 평가하고 그들의 생각을 전하는 것이 참 매력적이다. 특히 선수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물론 해설을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에 대한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어야 해서 충분한 준비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 준비 시간도 즐거운 일인 것 같다. 그리고 카센터와 같은 정보/예능 프로그램도 좋은 것 같다. 가볍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모터스포츠를 알리는 기회가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정의철, 김동은 그리고 GT1 클래스에 데뷔한 서주원, E&M 모터스포츠의 김재현 등 젊은 선수들은 언제나 눈에 들어오고 관심의 대상이다. 하지만 난 의도적으로 그런 젊은 선수들 보다는 조금 더 경력이 있는 베테랑, 혹은 중견급 선수들을 조금 더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팀에 합류한 오일기 선수, 혹은 30대에서 레이스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황진우 감독 같은 선수 같은 선수들이 탄탄한 선수 층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들이 좋은 활동을 하고 좋은 마무리를 하면서 이후로 이어가고 그들이 다시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후배들이 귀엽고 기대가 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금은 누구 한명을 지목하기 보다는 전체가 성장해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Q 그래서 그럴까? 베테랑을 모든 팀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하는 것 같다.
맞다. 올해 초 제주도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베테랑 드라이버들을 모아서 팀을 만들어 보고 싶다. ‘노인정 팀’이라고 해야 할까? 이재우, 류시원, 조항우 그리고 오일기 같이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20년 이상 모터스포츠에 최선을 다하면서 열정을 바친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혹자는 이런 베테랑 드라이버보고 은퇴를 종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기량이 그렇게 녹 슬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말 모터스포츠의 역사이자 경험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장난치듯 이재우 감독에게 은퇴하라며 웃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 화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김정수 단장, 황운기 단장 같은 베테랑들이 존경 받는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앞으로 더 잘되고 더 높은 존경을 받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옛날이 아니니까 지금 시대의 분위기와 함께 해야한다.
새로운 팀을 만든다면 물론 신인, 어린 선수들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당장 팀을 만들라고 한다면 이재우 같은 베테랑 드라이버를 영입하고 싶고 수 년 뒤, 충분한 준비를 하고 팀을 만든다고 한다면 한 명은 외국인 드라이버, 그리고 또 한명은 충분히 경험을 가진 20대 후반, 혹은 30대 초중반의 한국 레이서를 키우고 싶다.
투어링 카는 클래스가 올라갈 수록 편안하게 탈 수 있기 때문에 체력보다는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좋을 것 같다. 정의철, 김동은, 김재현 같이 투어링카 레이스에서 충분한 경험이 있는 선수를 선발, 신인급 선수도 좋겠지만 그 선수가 성장할 때 성적 부담으로 조급해지면 그 충분한 성장을 하지 못하는 선수로 남을 위험이 있어서 되도록 자제하고 싶다.
오프로드 레이스에서 시작해서 온로드 스프린트 레이스까지 버티고 또 레이서로서 커리어를 잘 쌓아가고 있는 유일한 두 선수가 나와 올해 우리팀에 합류한 오일기다. 오프로드 출신이라고 텃세에 정말 마음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내심 늘 오일기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카레이서 중 운전을 참 잘하는 레이서 중 하나다.
사실 팀 소속 선수로 일기가 합류한다는 이야기에 회사에서 장난 삼아 이야기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회사가 바라는 게 정말 오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과 다소 거리가 멀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정말 괜찮을까? 그리고 인디고 측에서 이적을 용인할지 걱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같은 팀에 합류를 확정하니 기분은 좋았다.
Q 오일기의 합류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오일기라는 베테랑 선수의 합류로 세컨 드라이버에 대한 걱정과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선수보다도 믿을 수 있고, 미케닉들이나 팀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다독일 수 있는 경험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시즌 초반 차량 문제 등으로 마음 고생이 많았을텐데 싫은 기색 없이 이렇게 훌륭한 레이스를 펼쳐주고 있어 무척 고맙다. 다만 술 먹고 SNS에 글을 쓰는 것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고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고, 그 당시 루키들이 베테랑이 되어서 각 팀은 물론 한국 모터스포츠를 이끌고 있다. 어쨌든 내 레이스 커리어를 구분해보면 오프로드 레이스 5년 온로드 스프린트 레이스가 20년인데, 투어링카가 10년, 스톡카가 10년이니 어느새 25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흘렀다. 처음 김의수라고 한다면 투어링카의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새 스톡카 드라이버라는 타이틀만 기억되는 것 같아서 또 새로운 기분이 든다.
Q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은퇴할 시기가 되었을 때 어떤 카레이서로 기억되고 싶은가?
이런 질문에는 정말 어떤 답을 해야할지 모르겟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답은 그냥 후배들이 생각했을 때 ‘김의수는 참 레이스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라고 회고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것이 전부다. 그외에는 따로 생각해본 건 없는 것 같다.
사진: 슈퍼레이스, 한국모터스포츠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