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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에 날아갔다'‥빛바랜 ECB의 깜짝 발표

안승찬 기자I 2016.03.11 06:46:28

쏟아부은 ECB 깜짝 부양책에도 유럽주가 오히려 하락
"추가 금리인하 없다" 드라기 총재 발언 '악수(惡手)'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AFP)
[뉴욕=이데일리 안승찬 특파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했다. 하지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그 반대의 경우다.

10일(현지시간) ECB는 시장의 기대치를 넘어서는 ‘깜작’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드라기 ECB 총재의 말 한마디에 부양책은 빛이 바랬다.

ECB의 발표에 잠시 환호하던 유럽 주식시장에선 오히려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 “디플레이션 우려”‥ECB의 깜짝 부양책

이날 ECB가 발표한 경기 부양책은 그야말로 ‘종합세트’와 같다. 거의 모든 금리를 일제히 인하했다.

ECB는 가뜩이나 -0.3%인 예치금리를 -0.4%로 더 내렸다. 은행에서 ECB에 돈을 맡길 때 이자는 받는 게 아니라 0.4%의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준금리는 0.05%에서 0%로 내렸다. 기준금리도 제로금리로 떨어진 것이다. 한계대출 금리는 0.25%로 인하했다.

ECB는 또 채권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양적완화(QE) 규모를 월 800억유로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매입 규모는 월 600억유로 규모다.

시장에서는 ECB가 월 100억유로 정도 늘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보다 QE 확대 규모가 컸다.

◇ ECB, 시중은행에 돈 빌려주며 ‘보조금’ 지급

예치금 금리를 낮추면 유로존 은행권의 손실이 커질 수 있다. ECB는 금융권의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조치도 마련했다.

은행들의 대출 실적에 따라 초저금리 장기 유동성을 지원하는 제2차 ‘장기저리대출프로그램(TLTRO)’를 6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유로존 은행들이 ECB 기준에 부합하는 대출실적에 따라 ECB로부터 최저 -0.40%의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은행이 ECB에서 돈을 빌리는 대가로 최고 연 0.40%의 보조금을 받는 셈이다. 중앙은행이 마이너스 대출금리를 적용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ECB의 공격적인 부양책은 예상보다 유로존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낮은 물가가 문제다. ECB는 올해 유로존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1.0%에서 0.1%로 크게 낮췄다. 성장률 전망치는 1.7%에서 1.4%로 조정했다. 경제 성장이 나빠지면서 물가가 정체되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뜻이다.

드라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몇달간 (유로존의)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에 머물 것”이라며 올 연말이 돼야 물가가 오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클라우스 비스텐센은 “시장 예상보다 상당히 공격적인 조치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 “추가 금리인하 없다” 발언 한방에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드라기 총재의 발언이 결정적인 악수(惡手)가 됐다. 드라기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발언한 것이다.

물론 드라기 총재는 ”새로운 요인이 나타나면 금리에 대한 (ECB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ECB가 추가로 금리를 인하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말라”고 비교적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이 발언이 전해지자 시장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유로화 가치는 오히려 급반등했다. 다 쏟아부은 ECB가 더는 추가적인 금리 인하 여력이 없을 것이란 해석이 퍼졌기 때문이다. ECB는 성실하고 공격적인 부양책을 내놓고도 결국 시장을 설득하지 못했다.

급등하던 유럽 증시도 유로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지수는 전거래일보다 2.31% 급락했고, 프랑스 파리 증시와 영국 런던 증시도 1.7% 하락했다.

한 시장 분석가는 “ECB의 금리인하 발표로 떨어졌던 유로화 가치가 드라기 총재의 발언 이후 다시 오르면서 증시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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