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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 꿈꾸다 '사제'의 길로..정진석, 영원히 잠들다

윤종성 기자I 2021.04.28 07:14:20

최연소 주교· 韓 두번째 추기경 임명
42년간 청주교구·서울대교구장 지내
'교회법' 번역·해설서 등 큰 자취 남겨

정진석 추기경(사진=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지난 27일 선종한 정진석 추기경은 최연소 주교로 발탁돼 42년간 청주교구·서울대교구장을 지낸 한국 가톨릭교회의 대표 인사다.

그는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행복하게 사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며, 감사의 인사와 함께 행복을 염원하는 바람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어린 시절 발명가를 꿈꿨다가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고서 사제의 길을 택한 그는 언제나 책과 가까이 지내며 60년 사목 활동 중에도 독서와 집필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년 가까이 교회법전을 번역하고 해설서를 펴내며 한국 가톨릭계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정 추기경은 1931년 12월 2일(호적상 7일) 서울 중구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 후 나흘만에 ‘니콜라오’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다.

외할아버지가 당시 명동성당 사목회장이었을 만큼 집안 신앙생활은 깊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비교적 부유했던 외가에서 자란 그는 당시 서울 명동의 계성보통학교에 다닐 때 책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인근 소공동에는 일본인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책을 접했고 이때 발명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중앙중학교를 거쳐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발명가, 과학자의 길로 한 걸음 다가섰으나 불과 두 달 만에 터진 전쟁은 그와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놨다.

1950년 9월 6촌 동생과 함께 은신해있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그만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서까래에 동생이 숨지는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되기로 한 데에는 책 한 권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첫 번째 역서이기도 한 ‘성녀 마리아 고레티’이다.

한국전쟁에 국민방위군으로 징집됐던 정 추기경은 미군 통역병으로 일하며 알게 된 미군 군종 신부의 책장에서 이 책을 가져와 읽게 됐고, 성녀의 행적에 사제의 길을 갈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내려면 주교의 허락이 필요했는데, 노기남 주교는 입학을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랐던 정 추기경 어머니의 완곡한 부탁에 노 주교가 결국 입학을 허락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사진은 지난 2013년 3월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새 교황 프란치스코를 첫 알현하는 정진석 추기경의 모습(사진=연합뉴스)
1954년 신학교에 입학한 그는 1961년 사제품을 받았다.

신자들과 함께하는 신부로, 신학교 교사로, 교구장 비서로 봉직한 정 추기경은 1968년 로마 우르바노 대학으로 공부를 하러 떠난다.

후일 교회법 전문가로서 길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년 반 만에 교회법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방학 때 미국 교회를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자신이 주교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당시 만 39세로, 최연소 주교가 됐다. 그는 1970년 가난하고 힘들었던 청주교구장에 취임했다.

정 추기경의 첫 사목 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었다.

주교로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 추기경의 적극적인 사목활동으로 1970년 4만8000명에 그쳤던 교구 신자 수는 1990년 8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부름을 받은 건 1998년이다.

서울대교구장이었던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정년을 맞아 교황청에 사직서를 내자,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그가 후임 교구장으로 선택됐다.

정 추기경은 2012년까지 14년간 서울대교구장을 지내며 여러 변화를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된 뒤로 신부들의 투표로 교구 지구장을 선출토록 해 지구 중심의 사목 체제를 만들었다.

2000년에는 교구 시노드(synod)를 개최했다. 시노드는 교리와 규율 등을 전반적으로 토의하는 자문기구 성격의 교회 회의체다. 교구 시노드는 1922년 열린 이후 약 80년 만에 다시 개최된 것이다.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장 때부터 생명을 사목활동의 맨 앞에 뒀는데, 2005년에는 생명 운동을 본격 추진할 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는 생명 운동의 연장선에서 일찌감치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2006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한국에서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두 번째 추기경이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을 지낸 정진석 추기경이 27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사진은 지난 2006년 2월 22일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추기경으로 임명받은 정진석 서울대구교 대주교(왼쪽)와 김수환 추기경이 명동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앞서 손을 맞잡고 기쁨을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그의 생애를 돌아볼 때 교회법은 빼놓을 수 없다.

사제가 된 뒤 신학교 교사를 하며 라틴어를 익혔던 정 추기경은 1968년 로마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교회법을 전문적으로 공부했다.

유학 시절 라틴어-일본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는 그가 라틴어 교회법전을 한국어로 번역하겠다는 결심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

청주교구장으로 있던 1983년 교회법 번역위원회를 출범하고, 교회법을 전공한 사제 10여명과 함께 교회법전 번역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시작한 장도(壯途)는 1989년 라틴어-한국어 대역판 교회법전을 내놓으며 결실을 봤다.

그는 역작을 낸 뒤로도 교회법을 쉽고 정확히 알리고 싶었던 바람을 놓지 않았다.

교회법 해설서를 틈틈이 쓰기 시작해 2002년까지 총 15권짜리 교회법 해설서를 완간했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교회법에 매달린 성과였다.

정 추기경은 1955년 ‘성녀 마리아 고레티’를 시작으로 총 13권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저서로는 1961년 낸 ‘장미꽃다발’부터 2019년 쓴 ‘위대한 사명’까지 45권에 이른다.

정진석 추기경이 선종한지 하루가 지난 28일 새벽 명동성당에서 정 추기경 시신이 유리관에 안치된 가운데 선종미사가 진행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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