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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역사왜곡, 특별법 제정이 최선인가

최은영 기자I 2020.06.30 05:00:00

김한규 변호사·전 서울변호사회장

1980년 5월 광주가 민주화 성지로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거쳐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학살 주범들에 대한 사법판단이 내려졌고 국가기념일로도 지정되었다. 이제 절대 대다수 국민들은 자연스럽게‘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오늘에도 5·18을 폄훼하고 비방하는 세력이 있다. 지난 2월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을 북한군이라고 주장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 등으로 지만원 씨가 1심에서 징역 2년에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고, 최근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시 북한에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펴냈던 작가에게 1심에서 사자(死者)명예훼손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를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하여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우리 현대사에는 5·18이 아니더라도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그런데 왜, 도대체 어떤 이유로 5·18에 집중해서 역사왜곡을 시도하는 것일까. 다양한 시각이 있겠지만, 호남에 대한 지역차별도 주된 이유로 보인다. 극우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일베)에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시신이 담긴 관을 ‘홍어 택배’에 비유한 게시물이 올라와 큰 충격을 준적도 있었다.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시도는 어렵사리 이룬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을 고취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것으로 정부차원에서 단호한 대처가 필요하다 데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그 대응방식이다.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야권(특히 민주당)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왜곡을 처벌하는 법안을 여러 차례 발의했고, 지난 21대 총선에서 압승을 차지한 민주당은 또 다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과반수를 한참 초과한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다면 법안이 통과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에 발의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에 따르면, 정부의 발표·조사 등을 통해 이미 명백한 사실로 확인된 부분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처벌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별법 도입 취지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정부의 발표에 대한 허위사실유포는 당연히 처벌해도 되는가는 다른 문제다. 처벌을 주장하는 측은 독일 등 유럽 다수국가에서 시행 중인 ‘홀로코스트 부인’ 처벌규정을 근거로 든다. 실제로 이 법에 의해 처벌된 사례도 상당수 있다. 2005년 오스트리아에서 체포되어 실형을 선고 받은 영국 작가인 어빙(Irving)이 대표적이다.

홀로코스트나 5·18을 부인하고 왜곡하는 표현이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일으킨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법을 제정해 이를 형벌로 규제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별개 문제다. 사회공론의 장이 아닌 법원을 통해 문제해결을 하려는 시도가 과연 최선이냐는 것이다.

만일 처벌로 인해 더 이상의 역사왜곡이 없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현행법이 아닌 특별법 신설을 통한 처벌은 또 다른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거나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도 있다. 지만원 사례와 같이 현행 법 테두리에서도 일부는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악한 표현은 선한 표현으로 대항하여 고립시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헌법취지에 부합한다. 다른 역사왜곡 예컨대 위안부, 6·25 남침, 천안함 피격 등 그때마다 특별법을 제정해서 처벌할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처벌규정 신설보다는 헌법 개정을 통해 5·18을 4·19 혁명과 대등한 지위로 안착시키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홀로코스트부인과 관련해 어빙과 재판을 한 립스타트(Lipstadt)는 어빙의 재판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열제가 승리했기 때문에 나는 기쁘지 않다. 나는 검열을 통해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자와 투쟁하는 유일한 방법은 역사와 진실이다.”(‘국가범죄’ 이재승 지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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