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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키워드]구로다 쇼크, 작년 12월 드라기 `데자뷰`

이정훈 기자I 2016.04.29 07:33:43

망설인 BOJ에 엔화↑ 주식값↓…작년 12월 ECB와 흡사
높은 기대-최근 통화가치 하락 감안…부양기조 여전

지난해 12월3일 시장을 실망시킨 유럽중앙은행(ECB) 통화정책회의 이후 유로화 가치는 큰 폭으로 뛰었다. 그리고 전날(28일) 일본은행(BOJ) 통화정책회의에서도 동일한 상황이 재현됐다. (마켓포인트 데이터 인용)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구로다 쇼크!` 바로 전날(28일) 일본은행(BOJ) 통화정책회의가 예상과 달리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기존 양적완화(QE)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면서 엔화가치가 급등하고 일본 주식시장이 급락한 것을 두고 시장에서는 이렇게들 불렀다.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BOJ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의 정책효과가 실물경제에 파급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추가 부양을 서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블룸버그 설문조사에서 41명의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절반이 넘는 23명이 마이너스 금리 추가 인하와 QE 자산매입 규모 확대를 점친 것을 감안하면 시장 기대를 저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111엔이 넘었던 엔화값은 곧장 108엔대까지 올랐고 닛케이225지수는 3.6% 이상 폭락했다. (☞기사참고: 4월6일자 [증시키워드]추가부양으로 향해가는 일본銀)

이제 기억을 더듬어 지난해 12월3일을 떠올려 보면 거의 동일한 일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도 벌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ECB는 마이너스인 예금금리를 0.1%포인트(10bp) 더 인하했지만 QE 규모는 유지한 채 매입 기간만 6개월 연장하는 부양책을 내놓았다. QE 규모까지 250억~300억유로 더 확대할 것으로 예상했던 시장은 ECB 조치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범유럽권지수인 Stoxx600지수는 3.2% 가까이 추락했고 달러대비 유로화 가치는 1.07달러대에서 1.09달러대까지 급등했다. 재미있는 건 당시에도 이를 두고 `드라기 쇼크`라고들 했다는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곤 한다. 당시 유로존은 경기가 악화되는 와중에서도 유로화값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었고 주식시장은 비실비실했다. 가계도, 기업도, 시장도 한 목소리로 ECB에 추가 부양을 압박하고 있었다. 현재 일본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수출도, 내수도 부진한데 엔화가치는 날로 치솟아 수출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글로벌 증시가 랠리를 보이는데도 일본만 유독 약한 모습이다. 구로다 총재도 당시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못지 않게 부양 압박을 받아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드라기와 구로다 두 총재가 야기한 쇼크는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겠다. 당시 유로화가 너무 고평가됐다는 불만이 컸지만 ECB 통화정책회의 전에는 부양 기대감이 선(先)반영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1.14달러 수준에서 1.06달러선까지 많이 내려와 있었다. 최근에도 엔화값이 많이 뛰었지만 정작 BOJ 통화정책회의 전에는 역시 부양 기대로 인해 엔화값이 107엔대에서 111엔대까지 떨어졌다. 이렇다보니 두 총재로서는 자국 통화가치를 낮추기 위한 추가 부양을 조금 더 늦출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셈이었다. 또한 예상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6월에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그 전부터 서서히 달러화가치가 오를 것이고 이 또한 자연스럽게 자국 통화가치를 낮춰줄 것이다. 결국 부양카드가 서서히 소진되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을 때 실탄을 아껴두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상황을 좀더 지켜보다가 연준이 6월에도 금리 인상을 못할 상황이 될 때 부양카드를 꺼내들면 된다. 특히 시장 기대가 이렇게 높은 상황에선 부양책을 내놔봐야 서프라이즈를 연출하기도 어려우니 더더욱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시장은 “더이상 ECB가 쓸만한 부양정책이 없는 것 아니냐”는 과도한 우려를 했다. 지금도 시장에선 “BOJ는 더 쓸만한 부양카드가 없나 보다”며 난리다. 그렇지 않다. 드라기 총재는 이후 추가 부양책을 거듭해서 썼고 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구로다 역시 그럴 것이다. 괜한 우려로 인해 시장이 하락한다면 분명 싼 값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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