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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도 비건식 제공한다는데... "전쟁나도 채식 별도 제공?"

김세은 기자I 2021.01.04 00:15:22

국방부, 개인의 신념 존중위해 '비건식' 도입
추가 예산 확보 등 현실적 문제 있어
"전시 상황 대비하는 군대 조직 특성 미고려" 지적도

비건(채식) 문화 확산에 따라 2021년부터 군대에서도 채식 급식을 확대한다. 입대 전 채식주의자라는 점을 밝히면 '급식배려병사'로 분류해 채소 중심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것.

다양성을 존중하고 환경보호에 기여한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채식 식단 구성을 위해 추가예산이 필요할뿐만 아니라 통일성을 강조하는 군대 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제한된 예산... 다양한 채식주의자 니즈 부합 의문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모든 부대에서(채식주의자임을 밝힌 장병이 속한 부대에서) 급식배려병사들이 비건식을 받을 수 있고 비건식의 종류 역시 늘어난다. 국방부는 올해 시범사업부대를 선정해 시행한 후 나타나는 문제점 등을 보완하면서 확대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콩으로 만든 스테이크 등 새로운 메뉴도 추가해 식단도 다양화 할 예정이다.

입영 전 채식주의자임을 밝히면 어떤 종류의 채식주의자에 해당하는지, 즉 채식의 정도는 어떻게 되는지를 함께 파악해 적합한 식단을 제공할 예정이다.



채식 정도에 맞게 메뉴를 구성하면 모두 같은 비건식이 아닌 ‘개인 맞춤형’ 식단을 받게 된다. 개인마다 메뉴 구성이 달라져야 하는데, 정해진 예산 내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영양학자 강영희 박사는 "채식 단계에 따라 같은 비용으로도 메뉴를 다르게 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완전한 채식을 하는 ‘비건’ 이 아니고 동물이 생산해낸 유제품(우유, 꿀 등)과 달걀을 섭취하는 '락토'나 '락토오보'에 해당하면 비교적 적은 예산을 가지고도 육류 단백질원을 대체하는 메뉴로 배식할 수 있다. 유제품과 달걀은 원재료 단가가 높은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뉴를 '완전 비건식'으로 구성할 때는 고려할 점이 더 많다고 강 교수는 전했다.

지난달 29일 국방부가 발표한 '2021년도 급식방침'을 보면, 장병 1인당 하루 기본 급식비는 8790원이다. 육군 장병 기준 하루 필요 열량은 3000kcal이다. 군인은 하루에 세 끼를 섭취하므로 한 끼의 예산은 2930원, 필요 열량은 1000kcal가 된다.

강 박사는 "약 3000원의 제한된 비용으로 1000kcal의 순수 채식 식단을 구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어 "군인들은 체력 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식단을 섭취해야 한다"며 "제한된 예산으로 구성한 순수 비건식으로 충분한 영양소를 공급할 수 있을까 우려되는 점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육류를 대체할 수 있는 양질의 단백질원을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라고 했다.

현역 군인인 황모(25.남)씨는 "나는 락토-오보 채식주의자라서 군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선택적 채식주의자 입장에서 현재 일반식도 큰 무리 없이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비건에게는 양적·질적으로 일반식과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개인 신념에 따른 생활 양식 존중…긴급한 상황에도?

예산뿐만 아니라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대라는 특수성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시 상황처럼 급박한 상황에서도 급식배려병사 개개인을 고려한 식단 지급이 가능하냐는 것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

현역 ROTC 학사 장교인 김모(24.남)씨는 "군대는 상명하복의 지휘·통솔이 가장 큰 원칙"이라며 "전시와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집단 전체가 아닌 개인의 성향을 존중해야 한다면 작전 수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누군가는 급식배려병사를 위한 비건식을 따로 챙겨야 한다는 말"이라며 "병력을 효율적으로 통솔하기 힘들어질 텐데 실제 상황에서도 개개인을 고려한 식단 지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라고 우려했다.

군의 기강과 관련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비건 식단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을 시작으로 여러 방면에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일상생활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이곳이 군대라는 점에서 얘기가 달라진다. 전쟁 중 병사 개개인의 요구 사항을 모두 고려할 수는 없다"며 "군대는 늘 전쟁 상황을 대비하는 곳이다. 적어도 이곳에 있는 동안은 전시 상황과 가장 유사하게 생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전시 상황 중 비건식을 지급하는 것까지에 대한 구체적인 관련 지침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급식배려병사에게 별도의 식단을 제공하는 것이 어려움을 충분히 인지하고, 이와 관련해 해결 방안을 모색해 갈 것이라고 전했다.



/스냅타임 김세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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