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목멱칼럼]정치적 무리수에 흔들리는 대입제도

편집국 기자I 2020.10.26 06:00: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대학입시 시즌이다. 올해부터는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지원자의 출신 학교를 가리는 ‘블라인드’가 도입되고 내후년부터는 자기소개서 폐지, 교내경시대회 수상실적 기재 1회 한정 등으로 개편될 예정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기 위해 설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애초 기대한 목표와 전혀 다른 방향이 될까 우려된다. 교사 개개인과 학교별 수준이 천차만별인 현실에서 이러한 전형은 늘 불안하다.

그간 대입 제도는 입시 현장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조차 헷갈릴 정도로 매우 복잡하게 변형되어 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경제수준의 급격한 향상, 사교육 병폐 그리고 정권에 따른 정책 이념과 철학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0년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자 중 대학 진학률은 27%에 불과하였다. 이후 대학진학 욕구의 꾸준한 증가, 중산층의 확대로 사교육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대학의 문을 대폭 개방했다.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대신 출구인 졸업문은 좁게 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되었다, 하지만 몇 년을 못 가고 원상복귀했다. 실패한 정책으로 남았다.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 했던가. 한시적이긴 했지만 이 시기 넓혀진 대학문을 통해 비교적 쉽게 입학과 졸업을 할 수 있었던 학생들은 정책이 만들어준 대학입시의 행운아들이었다,

김영삼 정부 들어 다시 대학설립 요건이 대폭 완화되었고, 사립대학들이 우후죽순 설립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때 대학 진학률이 84%까지 이르렀다. 세계 최고의 고등학력 국가가 되었다. 높은 진학률은 노동 시장의 양적 공급 측면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직무 수준에 무관한 학력 인플레와 직업과 학력의 눈높이 미스매치로 청년실업의 요인이 되어 왔다.

이제는 건강수명이 늘어나고 인공지능, 로봇 등 디지털 경제사회로의 급격한 전환하고 있다. 향후 끊임없는 평생학습과 첨단 고등교육의 양적, 질적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예측된다. 즉 지금까지 부정적 관점으로 보았던 높은 대학 진학률에 대한 시각이 변화할 수도 있다. 다만, 다양한 선발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독일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고등교육 수료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원상복귀의 또 다른 사례는 의학전문대학원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기존 학부 의과대학이 폐지되고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신입생을 선발하기 시작했다. 이는 의사나 법조인이 되는 경로를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사회경험, 그리고 일반인들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선한 의도로 시작되었으나 결국 정착되지 못하고 원래의 학부제 의과대학으로 대부분 회귀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법률안이 통과되어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신입생 선발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사법고시 폐지에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이 법조인 양성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입학경쟁률이 해마다 치솟고 있어 로스쿨 입학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등록금은 한해 수천만원 수준이니 일부 취약계층을 위한 장학금을 고려해도 확률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다.

지난 여름 뜨겁게 달군 공공의대 설립 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당시 일반들에게 주목을 받은 공공의대 학생 선발 방식이 큰 논란을 일으켰다. 지자체가 추천한 시민단체가 참여하여 의대 신입생 선발에 관여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여러 정부를 거치며 우리는 다양한 실패 사례를 겪었고, 이 또한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미래 의료인을 선발함에 있어 전문성이 전혀 없는 시민단체가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정치는 진실에 대한 요구에서 비켜나 있는가.’ 몇 해 전 프랑스 대입시험 바칼로레아 자연계 시험문제 중 하나이다, 21세기 디지털 선도국가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진실은 각 분야에 두각을 나타낼 잠재 인력 선발이다. 하지만 아직도 고민과 연구가 결여된 교육정책을 상황과 인기에 따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적용하는 정치적 무리수들은 여전하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