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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몸을 주긴 쉽나. ‘하룻밤’이라는 게 그리 깔끔하던가. “그 다음 일은 생각 안해봤어요?”라는 여자(문채원 분)와 “그건 알아서 정리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요?”라고 말하는 남자(유연석 분)의 영화 속 대사는 현실 그대로다.
‘네가 날 좋아하는데 1만큼 노력을 하면, 나도 0.8 정도는 노력해볼게’라는 감정의 더치페이는 또 언제 성공한 적이 있던가. “실컷 밀다가 실컷 당겨보니 그 끝에 달려오는 건 시간 낭비, 감정 낭비, 돈 낭비, 인생 낭비더라”는 슬픈 동화는 스테디셀러다.
이러나 저러나 감정적으로 깊어질수록 인간 관계는 어려워진다. 몸과 마음이 섞이는 사랑 관계는 예측불허다. 행복에 대한 막연함이 이별에 대한 막연함을 넘어설 때 시작되는 게 사랑이다. ‘살면서 내 집은 한번 가져볼 수 있을까’ ‘아니 살면서 나의 아이는 한번 낳아볼 수 있을까’ ‘그보다, 살면서 내 밥벌이는 꾸준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는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랑 한 번 하기 힘든 건 당연한 일. 막연한 행복 조차 꿈꿔 볼 여유가 없다고, 이 세상이 그렇게 만든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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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행 KTX에서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남녀의 로맨스. 기차에 오르기 전 어쩌다 마주친 이 여자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던 남자는 적극적이다. 개찰구 여직원에게 명찰에 적힌 이름을 불러주며 “고마워요”라고 말해주는 ‘꾼’이다. “나 당신한테 반했는데 어떻게든 당신이랑 자려고 한다”는 고백은 그래서 이상하지 않다. 이 남자를 연기한 배우 유연석의 말대로 그저 “밥 먹었어요?”라는 인사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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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남자와 빡빡한 여자의 ‘밀당 로맨스’처럼 보이는 ‘그날의 분위기’는 마냥 가벼운 영화는 아니다. 즐기는 사람의 심리 상태와 가치관에 따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여지도 준다. “섹스 많이 하시고 행복하세요”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는 남자. 10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결혼하자”는 프러포즈는커녕 “바쁘니까 나중에”라는 밀어냄을 당해야 하는 여자. 두 사람 모두 현실이라는 틀에 갇혀 솔직한 감정에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다.
유연석은 “내 나름대로 이 남자는 과거에 깊은 사랑을 했다가 꽤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다”며 “가끔 그가 무심하게 던지는 대사 속에 그런 상처가 묻어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사랑이 고픈 남자지만 그 끝에 데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용기 없는 남자”라며 “그저 가벼운 바람둥이처럼 보이지만 알고보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영화 시작에서 끝으로 갈수록 관객에게도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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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은 “‘그날의 분위기’라는 영화가 남녀의 사랑, 연애,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 중심을 맞췄지만 좀 더 확대해서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았다”면서 “사실 요즘 사회에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서로에 대해 신경 쓸 여유 자체가 없지 않나”고 돌아봤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라면 이젠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 나와 같이 엘레베이터를 탄 사람에 대한 작은 관심과 예의부터 되찾았으면 좋겠다”며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우연한 순간이 인연이 돼 죽었던 감정 세포를 깨어나게 할 용기가 생길 수도 있지 않나”며 웃었다.
‘그날의 분위기’는 14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