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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민 소방관 "동료들과 함께라 무섭지 않다"[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

이연호 기자I 2023.11.09 06:30:00

11월 9일 '소방의 날'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1년 연재 시작
동료들 화재 지원에 후배와 둘만 남았던 이 소방관, 가스 중독 사고 3명 모두 구조
올 4월 휴무일엔 광양 서천서 자살 시도 50대 여성 구하기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동료들 믿고 매일 화마에 뛰어든다"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편집자 주]‘퍼스트 인, 라스트 아웃(First In, Last Out·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늦게 나온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마음속 깊이 새기는 신조 같은 문구다. 불이 났을 때 목조 건물 기준 내부 기온은 1300℃를 훌쩍 넘는다. 그 시뻘건 불구덩이 속으로 45분 가량 숨쉴 수 있는 20kg 산소통을 멘 채 서슴없이 들어가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이다.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그러나 위험에 기꺼이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들이 바로 소방관인 것이다. 투철한 책임감과 사명감 그리고 희생정신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단련된 마음과 몸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다. 지난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소방청에서 제출 받은 ‘소방공무원 건강 진단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소방공무원 정기 검진 실시자 6만2453명 중 4만5453명(72.7%)이 건강 이상으로 관찰이 필요하거나 질병 소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 이상자 중 6242명(13.7%)은 직업병으로 인한 건강 이상으로 확인됐다.

이상 동기 범죄 빈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점차 복잡해지고 대형화되는 복합 재난 등 갈수록 흉흉하고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 매일 희망을 찾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농연(濃煙)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가는 일선 소방관들. 평범하지만 위대한 그들의 일상적인 감동 스토리를 널리 알려 독자들의 소방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소방관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고취하고자 기획 시리즈 ‘매일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11월 9일 ‘소방의 날’을 시작으로 매주 한 편씩 약 1년에 걸쳐 연재한다.
지난 2019년 발생한 전남 여수의 한 위험물 저장소 화재 당시 이학민 소방관이 불을 끄고 있다. 사진=이학민 소방관 본인 제공.
지난해 6월 어느 날 아침이었다. 전남 보성소방서 벌교119안전센터 소속 이학민(32) 소방관은 평소보다 더욱 긴장한 채 펌프차(소방차)에 앉아 후배 소방관 한 명과 대기 중이었다. 인근 고흥군에서 대규모 축사 화재가 발생해 동료들이 모두 그곳으로 지원을 나갔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턴 관내 모든 119 신고가 이 소방관과 후배 한 명, 총 2명의 몫이었다. 그런데 다른 동료들이 축사로 지원 나간 10분 후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지하실 사람이 쓰러짐’이란 지령서를 보는 이 소방관은 간단한 출동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 소방관은 곧바로 시동을 걸었다.

고흥군 동강면의 가스 중독 사고였다. 고흥군 관내 소방차들이 모두 축사 화재 진압에 투입된 상황이라, 그나마 동강면에서 가장 가까운 벌교 센터로 출동 요청이 온 것이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현장에 가까워질 즈음 사람들이 다급하게 그들을 향해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소방관은 순간 후배와 눈이 마주쳤다. 후배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이 소방관은 더욱 냉정해져야만 했다. 이 소방관은 후배와 함께 장비를 착용한 채 지하실로 급히 뛰어내려갔다.

랜턴으로 사고 현장을 비추니 세 명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에게 재빨리 산소 공급부터 시작했다. 추가 인원이 필요하다는 무전과 동시에 지하실 내 공기 정화도 시작했다. 그러나 건너편 무전기에선 ‘추가 차량이 구조 현장까지 약 40km 떨어져 있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안타까움에 마음을 쓸 새도 없었다. 후배와 함께 세 명에게 골고루 돌아가며 산소를 공급했다. 다행히 그중 한 명의 의식이 돌아와 그를 지상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 소방관이 메고 들어간 산소통 용량이 소진돼 구조 대상자들을 지하에 두고 다시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마음은 너무나 무거웠지만 모두가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용기를 교체하고 다시 지하실로 향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만큼 그 소리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지원 차량 및 인원들이 도착하고서 남은 두 명도 모두 무사히 구조할 수 있었다.

두어 달 후 이 소방관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때 질식됐던 구조자가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이었다.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 소방관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전남 순천에 사는 이 소방관은 지난 4월 1일 주말을 맞아 옆 동네 광양으로 가족과 바람을 쐬러 갔다. 벚꽃 축제를 맞아 오랜만에 들뜬 마음으로 서천 벚꽃길을 걸었다. 왕복 2km 정도 우레탄 산책로를 걸어가는데 50대 한 여성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런데 산책로를 돌아오는데 아까 본 그 여성이 물 위로 등을 보이고 큰대자로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사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천을 가로지르는 산책로 옆 돌다리를 봤더니 여자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옆을 지나던 한 할아버지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 곧바로 그 여성을 크게 부르며 물로 들어갔다. 몸을 돌려 물 밖으로 나와 여성의 의식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의식이 있었다. 출동한 광양소방서 소방관들에게 그 여성을 인계하고 나서야, 자신의 신발과 바지가 모래와 진흙에 뒤엉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친형, 외사촌 형 두 명 모두 소방관이라는 이 소방관에게 불로 뛰어들 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랬다. “어… 무섭지 않다? 솔직히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는 덧붙였다. “같이 들어가는 동료들이 있어 그들을 믿고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자라면 힘들 겁니다”.
전남 보성소방서 벌교119안전센터 소속 이학민 소방관(소방장). 사진=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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