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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실적에도 축포 못 터뜨린 K-반도체…대규모 투자 '빨간불'

이다원 기자I 2022.07.30 10:00:00

삼성·SK, 나란히 반도체 ‘역대 최대’ 실적 냈지만
경영진 “지나친 낙관·비관 안해…환경 정상화시 안정 성장”
하반기 반도체 본격 둔화 전망에…단기 투자 조정 유력
“장기적 관점에선 반도체 수요 늘 것…큰 변동 없을수도”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2분기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며,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힘을 과시했다. 다만 양사 모두 축포를 터트리는 대신 계획을 수정하며 경영 재정비에 나선 모습이다. 하반기 반도체 시황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단기 투자계획이 수술대에 오르면서 향후 예고한 대규모 투자에도 빨간 불이 켜진 게 아니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연합뉴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2분기 매출액은 77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14조10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이 호실적을 이끌었다. DS 부문의 2분기 매출액은 28조5000억원, 영업이익은 9조9800억원으로 지난 분기에 이어 분기 최대 매출을 새로 썼다.

SK하이닉스 역시 사상 처음으로 13조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실적 호조세를 이어갔다. SK하이닉스는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 13조8110억원, 영업이익 4조1926억원을 각각 기록했다고 밝혔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을 냈다.

두 기업 모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국 지역 봉쇄 등으로 인한 물류난과 이로 인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까지 덮치면서 2분기 경영 여건이 악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 반도체 양 쪽에서 성과를 내며 2분기 실적을 끌어올렸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새로운 수요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수익성 중심 판매 전략을 펼치며 판가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전분기 대비 이익이 61% 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 세계 최초로 3나노미터(㎚·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양산에 나서는 등 기술 경쟁력도 확보했다.

SK하이닉스는 판매량 전반을 높인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중심 수익성 개선에 나서며 매출액을 키웠다. 주력 제품인 10나노급 4세대(1a) D램, 176단 4D 낸드플래시 등 수율을 개선하는 한편, 컴퓨팅과 SSD 등 상대적으로 수요가 견조한 부문에서 매출이 발생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축포를 터트리는 대신 하반기를 대비에 총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올 하반기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하는 가운데 반도체 업황 역시 둔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 메모리 시장이 현재로서는 약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어 매일, 매주 업데이트하며 지켜보고 있다”며 “다양한 매크로 이슈가 시장 내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갖기보다 다각도로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담당 사장도 “SK하이닉스가 원화 기준 역대 최고 실적 기록하며 축하하는 자리여야 하지만 하반기 시황과 내년 불확실성 때문에 어려운 말씀을 많이 드린다”며 “메모리 산업이 몇 분기 전에는 상승 전환을 이야기하다 몇 개월 뒤에 또 하락 전환을 얘기하는 등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공급 측면에서 유동성을 회복하고, 전체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전처럼 메모리가 안정적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실제 올 하반기 반도체 업황 둔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올해 전 세계 반도체 매출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13.6%) 대비 대폭 낮아진 7.4%로, 매출액 전망치도 367억달러(약 48조원) 감소한 6392억달러(약 835조4000억원)로 하향 조정했다. 모바일, PC 등 IT 제품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다.

SK하이닉스 청주캠퍼스 정문. (사진=SK하이닉스)
반도체 다운사이클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당장 3분기부터 경영 고삐를 조일 계획이다. 가장 먼저 손볼 곳은 투자 계획이다. 생산량을 바로 조절하기 어려운 반도체 산업 특성을 고려하면, 예정된 투자를 미루거나 줄여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실제 양사 모두 단기 투자 계획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단 점을 암시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단기적 설비 투자 계획을 탄력적으로 재검토하며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청주공장 증설 계획을 보류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내년 규모를 상당 폭 줄이는 것을 포함한시설투자(CAPEX) 시나리오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업계 안팎에서도 단기적 관점에서의 투자 조정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다만 중장기적 시각에서 산업구조 전환 등으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투자 규모가 급격히 줄어들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이주완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그간 공급 과잉이 심각했던 것을 고려하면 당장은 기업 경영 차원에서 투자를 줄이는 것이 반도체 급락을 막는 길”고 설명했다. 또 “메모리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고 하반기에도 더 내리겠지만 이는 예상해온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기업 서버, 자동차 등 새로운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양재 다올투자증권 연구원도 “업황에 따라 CAPEX를 맞춰가는 것이고 단기적으로는 양사 모두 줄일 것 같지만 중장기적으로 투자가 계속 줄지는 않을 것”이라며 “매년 반도체 수요가 늘고 있고, 인프라 투자 비중이 높은 점을 고려하면 투자 규모를 크게 하향 조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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