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배신자’인가, ‘토착 왜구’인가

허영섭 기자I 2020.05.29 05:00:00
아무에게나 ‘배신자’라고 분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웬만큼 꿰고 있지 않다면 뒷감당이 겁나서도 주춤하기 마련이다. 속을 만큼 속았고, 당할 만큼 당해 보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30년 가까이 겪은 일이라고 한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와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과의 해묵은 애증관계다.

윤 당선인이 대구까지 찾아내려가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니,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그중에서도 정의연과 윤 당선인이 후원금을 거둬 피해자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제멋대로 썼다는 폭로 내용에 눈길이 쏠린다. 이미 상당 부분은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회계처리에서 단순 실수로 간주하기 어려운 뭉텅이 누락이 적지 않은데다 윤 당선인이 개인적으로 받은 모금액 중에서도 상당 부분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의 거주지로 마련했다는 안성 쉼터는 특히 의혹투성이다.

그렇다면 일단 국민 앞에 사정을 정확히 공개하고 잘못을 고백하는 게 도리다. 정의연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권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적 신뢰를 얻었고, 또 그 신뢰가 활동 영역을 넓히는 발판이 됐던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기업들이 나서서 후원금을 냈고, 어린 학생들까지 두루 모금에 참여한 데서도 신뢰의 정도를 확인하게 된다. 의혹의 당사자인 윤 당선인이 뒤늦게나마 오늘 공개 해명에 나선다니 솔직한 답변을 기대한다.

민주당 지도부의 일방적인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다. 윤 당선인을 향한 할머니의 폭로와 이에 대한 시중 여론에 오히려 경계심을 드러낸다. 조국 전 법무장관 사태에 이어 집권당으로서 사회적인 책임의식을 회피한 듯한 모습이다. 청와대도 생색낼 만한 일에는 곧잘 숟가락을 얹더니만 이번 일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이루겠다는 약속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아마도 지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협정을 부인하면서 형성된 ‘반일 전선’이 무뎌질까 염려한 탓일 것이다.

정의연이 정파적 조직이기주의를 앞세워 온 데 있어서도 반성이 필요하다. 베트남, 콩고, 짐바브웨 등으로 활동무대를 넓힌 것이 잘못일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들을 이용했던 측면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필요할 때는 할머니들을 앞세웠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팽개쳤다는 증언과 부합되는 대목이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지도부의 노선 강화에만 신경을 썼다는 지적이다. 역대 지도부의 정치·사회적 위치가 그만큼 높아졌고, 윤 전 이사장이 이번 국회에 진출하게 된 것도 그런 결과다.

위안부 지원활동 과정에서 ‘반일 정서’ 기반이 확대됐다는 것은 더욱 불편한 진실이다. 일본 정부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한 결과 타협은 거부되고 반일 구호만 난무하게 됐다. 현실적으로 일본과의 협력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언급이 나오면 곧바로 ‘친일’로 매도되는 상황이다. 일본에 코로나 방역물품을 전달했다고 해서 지자체 단체장에 대한 해임 청원이 빗발치는가 하면, 국립묘지에서 친일행각 인사들의 묘를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집권세력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으니 그 기반 마련에 기여한 정의연을 내치기란 처음부터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사태의 계기를 던진 이 할머니를 헐뜯는 얘기들도 들려온다. 심지어는 ‘토착 왜구’라고까지 비난한다는 것이다. 자나깨나 가슴에 납덩이로 짓눌리는 아픔을 견디며 지내 왔는데도 이제 말년에 이르러 다시 눈물과 한숨의 가슴앓이에 시달리게 됐다. 정치적 노선에 어긋난다고 여권 인사들로부터 버림받고 있는 것이다. ‘배신자’를 두둔하면서 피해 당사자를 마치 죽창으로 찌르겠다는 태세다. 우리 사회의 우울한 이분법적 자화상이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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