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김관용의 軍界一學]판문점선언 2년, 멈춰선 9·19 남북군사합의

김관용 기자I 2020.04.26 09:34:23
[이데일리 김관용 기자]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만나 ‘판문점선언’을 한지 2년이 흘렀습니다. 이 합의문에서 양 정상은 △핵 없는 한반도 실현 △연내 종전 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 설치 △이산가족 상봉 등을 천명했습니다. 같은 해 9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공감대에 따른 것입니다.

◇적대행위 중단 합의, 달라진 군사활동

9.19 군사합의 체결 이후 남북은 합의 내용 이행을 위한 조치들을 속도감 있게 추진했습니다. 비무장지대(DMZ) 내 상호 11개의 감시초소(GP) 시범철수를 비롯해 육·해·공 접경지역에서의 적대행위 중지,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등이 약속한 기한 내에 마무리됐습니다. 또 중부전선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의 공동유해 발굴을 위한 남북한 연결도로 개설, 한강하구 지역 남북공동 조사를 통한 해도 작성 등의 성과도 냈습니다.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의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비롯한 적대 행위들도 중지했습니다.

[고양=노진환 기자]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난 4월 27일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특히 MDL 기준 총 10km 폭의 완충지대를 설정해 이곳에서의 상호간 모든 적대행위를 금지하기로 함에 따라 육군 연대급 이상 기동훈련과 기갑차량을 이용한 실기동 훈련도 사라졌습니다. 북방한계선(NLL) 일정구역을 완충수역(서해 135km·동해 80km)으로 설정해 ‘분쟁의 바다’를 ‘평화의 바다’로 전환하자는 합의 하에 해군 함정의 기동훈련과 포사격 등이 제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백령도와 연평도 등에 배치된 해병대 K-9 자주포 등을 육지로 이동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MDL 상공 비행금지구역(서부 20km·동부 40km) 설정 합의를 통해 우리 군 정찰 항공기 등은 해당 기준선 밑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군사합의 무용론 ‘솔솔’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고 이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놓임에 따라 남북간 9.19 군사합의 이행도 차질을 빚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들어선 아예 진척이 없는 상태입니다. 남북 군사당국 간 대면 접촉도 지난 해 1월 30일 판문점에서 남북 공동수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제작한 한강하구 해도를 전달할 때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 해 2월 말까지 화살머리고지일대에서 진행할 공동유해발굴단을 구성해 상호 통보키로 했지만 북측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남북공동유해발굴은 남측의 단독 발굴만 이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DMZ 내 모든 GP 철수를 위한 논의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JSA 자유왕래 관련 합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서해 평화수역 조성 등을 논의할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구성은 요원한 상태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9.19 군사합의가 사문화 됐다며 이를 폐기하고 축소·조정된 한미연합훈련 등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2018년 10월 남북 및 유엔사 관계자가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JSA 비무장화 검증을 위한 현장 토의를 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실제로 북한은 최근 남한이 사정권인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장사정포 등을 잇따라 발사하며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군사합의에선 단거리 발사체 관련 내용은 명시하지 않고 있지만,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기 때문에 남한을 타격권으로 하는 무기체계의 실사격 훈련은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해 11월 9.19 군사합의에 따라 해안포 사격이 금지된 서해완충구역 내 창린도에서 해안포 실사격 훈련을 했습니다. 그간 북한의 군사적 활동에 9.19 군사합의 위반 평가를 유보하던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역시 합의를 어긴 행위라며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를 촉구한바 있습니다.

◇9.19군사합의 가치 지키려면…

군비통제는 신뢰구축 조치(CBM)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그러나 남과 북의 현재 관계에 신뢰가 있는지 회의적입니다. 남북 군사당국간 핫라인 운용도 제한적입니다. 북한군 훈련시 우리 측에 대한 사전 통보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입니다. 게다가 북한은 비핵화 약속만 했을 뿐, 여전히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남북간 70년 동안 지속돼 온 대결과 갈등을 하루아침에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9.19 군사합의에 따라 지난 2018년 11월 중부전선 DMZ 내 북한측 GP 폭파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국방부]
최근 잇따라 불거진 경계실패와 일부 장병들의 일탈 문제로 군이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만신창이 군대’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9.19군사합의 때문에 군 기강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북한이 더이상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우리 군의 정신전력이 무너지고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9.19 군사합의는 실제 이행조치들이 추진돼 선언적 수준에 그쳤던 과거의 합의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일부 북한의 위반 사례 등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군 당국이 9.19 군사합의 이행을 홍보하고 그 추진 의지를 드러내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이에 더해 국민들로 하여금 군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북한 매체를 통해 최근 실시된 해병대 연례 상륙훈련과 한미연합훈련 등의 소식을 접하는건 뭔가 이상합니다. 국방부와 군은 그간 훈련 일정 등을 일일이 알려주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의 역량을 국민들에게 홍보하고, 동시에 장병들이 필승의 의지를 다지는 그런 전략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해 보입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