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애들 팔아 장사하냐는 악플도”… ‘돈쭐’ 난 파스타집 근황[쩝쩝박사]

송혜수 기자I 2022.12.03 10:00:00

서울 마포구의 ‘진짜 파스타’ 오인태 대표
결식아동들에 무상으로 식사 제공해 화제
‘선한 영향력 가게’ 만들어 전국 3800여개 가게 동참
“동생 둘 데리고 2시간 걸려 찾아온 초등 손님 기억나”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
서울 마포구에서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의 모습. (사진=오 대표 제공)
[이데일리 송혜수 기자] “밥 한번 편하게 먹자!”

서울 마포구의 한 파스타집 사장은 말했다. 가게 입구에는 VIP를 위한 안내문을 붙이고 VIP들이 지켜야 할 5가지 계명을 적었다.

1.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눈치 보면 혼난다.

2. 뭐든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

3. 매주 월요일은 쉬니까 미리 알고 있으면 좋겠구나.

4. 다 먹고 나갈 때 카드 한 번, 미소 한 번 보여주고 갔으면 좋겠다.

5. 매일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이 가게의 VIP는 급식지원카드를 지닌 결식아동들이다. 급식지원카드는 보호자의 식사 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만 18세 미만의 저소득층 아동들에게 제공되는 복지 카드다. 일반 식당과 편의점 등에서 사용할 수 있게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고 있는데, 서울시의 식사 단가는 한 끼 당 8000원이다.

‘진짜 파스타’의 오인태(37) 대표는 지난 2019년 구청에 들렀다가 결식아동 꿈나무 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후 우연히 결식아동 관련 지원비 횡령 뉴스를 접하면서 나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차려 주자는 생각이 들어 가게에 VIP 제도를 만들었다.

오 대표의 선한 아이디어는 온라인상에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다. 가게에는 돈으로 혼쭐을 내주자는 이른바 ‘돈쭐’ 손님들이 줄을 섰고 오 대표를 따라 VIP에게 돈을 받지 않겠다는 가게들이 전국으로 퍼졌다. 언론에서도 오 대표의 아이디어가 소개됐다.

그로부터 2년여간의 시간이 지났다. 순식간에 이름을 알리게 된 오 대표는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28일 오 대표에게서 그간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진짜파스타’ 가게 입구. (사진=독자 제공, eco_simplelife_yuri)
그는 제일 먼저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별다른 생각 없이 관공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아이들을 도와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라며 “소방공무원분들에게도 테이블 무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대부분 김영란법 때문에 3만 원 미만 금액에서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 밖에 일부 연이 닿은 보호 종료 아이들에게도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결식아동 돕는 것을 먼저 시작했으니 조금 자리 잡은 이후에 보호 종료 아이들을 돕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게에 방문했는지를 묻자 오 대표는 “코로나19 전후로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라고 밝혔다. 그는 “코로나 전에는 아이들이 정말 많이 찾아줬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일주일에 3~4팀 정도 오는 것 같다”라며 “전국에 선한 영향력 가게가 늘어나면서 아이들이 분산된 영향도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가게 앞에 붙어 있는 VIP 안내문 (사진=독자 제공, heewan93)
선한 영향력 가게는 결식아동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단체다. 2019년 오 대표 가게를 시작으로 몇몇 가게들이 동참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전국의 3800여 개의 가게가 함께하고 있다. 여기에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카페, 안경점, 학원, 세탁소, 병원 등 다양한 업종이 각기 가능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돕고 있다.

오 대표는 선한 영향력 가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두고 자신의 가게 첫 VIP 손님들 덕분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결식아동을 돕겠다는 뜻을 알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아이들이 경기권에서 왔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쯤 돼 보이는 아이였는데 동생 둘을 데리고 왔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어 “자신이 괜히 아이들에게 힘든 걸음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날 종일 쓸데없는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그런데 이후 대전의 한 주점에서 전화가 왔다. 주점 사장은 ‘자신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주류업이라 구청에서 운영하는 결식아동 복지사업에는 동참하기 어렵다’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이때 생각보다 자영업자 중에서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더 많은 가게가 함께 아이들을 도와준다면 멀리 사는 아이들이 굳이 우리 가게를 찾기 위해 힘든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덧붙였다.

(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
그렇게 오 대표를 시작으로 선한 영향력 가게는 곳곳에 하나둘 생겨났다. 오 대표는 “처음에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단어도 잘 몰랐다”며 “대전 주점 사장에게서 ‘선한 영향력을 전파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는데, 단어 자체가 마음을 울려서 동참하는 가게를 모아 선한 영향력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단체로 활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물론 힘든 시기도 있었다. 그는 “안 좋게 보는 이들도 있었다. 심각하게는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가 있다”며 “‘애들 팔아서 장사한다’는 말도 들어봤다”고 털어놨다. 오 대표는 “어떤 이는 가게에 전화까지 하며 거침없는 욕설을 했다”며 “하도 시달려서 약까지 먹었다”고 말했다.

또 아이들을 돕는 마음을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도 없이 어른들끼리 와서 음식을 먹고 결식아동 카드를 보여주면서 ‘이거 있으면 너희 공짜라고 하지 않았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며 “부모님이 아이들을 앞장세운 뒤 본인의 친구들을 전부 불러 식사를 하고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밝혔다.

(사진=독자 제공, matstar_ruzzi)
어려울 때 힘이 됐던 것은 가게를 다녀간 아이가 남긴 한 마디였다. 오 대표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 친구가 해당 방송 댓글을 공개적으로 남겨줬다. 댓글에는 ‘지난 1년 동안 가게에서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식사했다.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며 “그걸 보고 나니 남들이 욕하는 것들이 다 상관없어졌다. 그저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인데 이를 조금 이뤘다는 뿌듯함이 들었고 이후 약도 끊었다”고 말했다.

가게가 큰 화제가 되면서 돈쭐내러 오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다는 질문에 그는 “감사하게도 찾아오는 분들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원래 홍대 가성비 맛집으로 인지도가 있던 터라 사실상 매출이 크게 오르진 않았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가게 매출과 관련해서는 코로나 때 타격이 가장 심했는데 매출이 80~90%까지 떨어져 봤다”며 “최악으로는 하루 매출이 2만 원일 때도 있었다. 지금 다시 살아나긴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매출에 비하면 50% 정도는 깎여 있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사진=오 대표 제공)
그는 어떤 업종이든 자영업은 늘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돕는 일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선한 영향력 가게의 사단법인을 준비 중인 오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용기를 내고 가게를 방문해준 아이들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아이들 덕에 생각지도 않던 일이 생겨났고 분에 넘치는 칭찬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단법인을 준비하면서도 많은 오해를 받았는데 첫 번째 오해는 ‘정치하려고 한다’였고, 두 번째 오해는 ‘이름 좀 알려서 잇속을 챙기려고 한다’는 것이다”라며 “둘 다 사실이 아니다. 저는 정치할 생각이 없고 이익을 편취하려는 마음도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오 대표는 “국가에서 지정한 사단법인이 되려면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있어야 한다. 원래는 회비 없이 운영하고 싶었지만 2년째 승인이 안 났다”며 “결국 사단법인의 건실성 때문에 회비를 내는 정회원이 필요하니 정회원이 되실 분들은 연 10만 원을 내달라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금전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는 오해를 받았다. 회비를 내지 않아도 불이익은 없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오 대표는 진짜 파스타가 ‘인생의 전환점’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사실 처음 창업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서 였다”며 “가게를 운영하면서 결식아동을 돕기까지 많은 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진짜 파스타는 인생의 전환점과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돕는 것에 대해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사실 10원이든 100원이든 지금 당장 의지만 있다면 누구든지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펼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쩝쩝박사’는 내 돈 주고 내가 사 먹는 ‘내돈내먹’ 기사임을 알려 드립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