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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의 코덱스]루드비코의 청동말…말은 말일 뿐이다

최은영 기자I 2020.07.09 05:00:00
[임규태 공학박사·전 조지아공대 교수]1482년 30세의 젊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을 키워준 피렌체를 떠나 밀라노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당시 밀라노는 루드비코 스포르차 공작이 섭정하고 있었다. 다빈치는 루드비코의 후원을 얻기 위해 자신을 소개하는 이력서를 보내는데, 그 장문의 편지 마지막 줄에 청동 기마상 제작을 제안한다. 다빈치는 왜 뜬금없는 기마상을 제안했을까.

루드비코는 출신 성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 스포르차 가문을 창시한 아버지 프란체스코가 사생아 출신이었던 것이다. 자신도 사생아였던 다빈치는 루드비
코의 출신 콤플렉스를 자극한다. 다빈치는 루드비코에게 아버지의 위대함을 과시할 수 있는 초대형 청동말상을 세워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루브비코는 다빈치의 편지에 응답하지 않았다.

7년 후 드디어 루드비코로부터 연락이 온다. 루드비코가 자신의 정부인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의뢰한 것이다. 그때 다빈치가 그린 초상화가 초기 걸작으로 평가받는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이다. 초상화에 만족한 루드비코는 드디어 다빈치가 그토록 고대하던 큰일을 맡긴다. 스포르차 가문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아버지 프란체스코 공작을 기리는 초대형 청동상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다빈치는 궁정에 공식 채용되었고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우여곡절 끝에 다빈치의 초대형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는다. 청동 주조에 쓰일 진흙으로 만든 기마상이 공개된 것이다. 루드비코는 7m 높이의 거대한 진흙상에 만족했고, 다빈치는 청동상 제작에 사용할 80톤(t)의 청동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빈치의 운은 여기까지였다. 루드비코가 섭정하던 조카 잔 갈레아초가 나폴리 가문과 결혼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다.

나폴리의 왕은 루드비코에게 섭정을 끝내고 사위 잔 갈레아초에게 밀라노 통치권을 양보하라고 압박한다. 이에 반발한 루드비코는 프랑스의 샤를 8세를 부추겨 나폴리를 침공하도록 유도한다. 프랑스군은 쉽게 나폴리를 정복했지만 이에 반발하는 교황청과 주변 국가들이 반 프랑스 동맹을 맺으면서 이탈리아 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진다.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자 위기를 감지한 루드비코는 프랑스를 배신하고 반 프랑스 동맹에 가담한다. 루드비코는 반 프랑스 동맹에 진정성을 과시하기 위해 다빈치가 청동상을 만들려고 모아놓은 80t의 청동을 징발하여 대포를 만들어 버린다. 다빈치는 자신의 야심찬 프로젝트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상황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다빈치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1498년 프랑스 샤를 8세가 죽고 루이 12세가 즉위한다. 루이 12세는 루드비코의 배신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밀라노 통치권이 사생아 출신 스포르차 가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며 대군을 이끌고 밀라노를 쳐들어온다. 루드비코는 황급히 밀라노에서 도망쳤지만, 결국 프랑스군에 포로로 잡혀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다빈치가 공들여 만든 7m짜리 진흙 말은 밀라노에 주둔한 프랑스 궁수들의 화살 표적으로 전락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청동말상 스케치. 1488년.
말은 말일 뿐이다. 다빈치의 7m 크기의 초대형 청동상이 완성되었어도 천박한 출신이라는 스포르차 가문의 평판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동상에 금박을 입혔어도 루드비코의 비참한 운명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루드비코가 권모술수가 아닌 정당한 실력으로 권력을 얻었다면 스포르차 가문은 위대한 가문 중 하나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공허한 말은 행동을 대체하지 못한다.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세상을 묘사하는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초연결사회’나 ‘언택트’(비대면)와 같은 단어들이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표현하는 말들이 한결같이 가리키는 것은 ‘분산형 사회’이다. 사실 기술 분야에서 분산 구조는 놀라운 일도 아니고 새로운 트렌드는 더욱 아니다. 분산 구조는 통신과 컴퓨터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ARM 프로세서가 분산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분산 시스템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간에 공유하는 정보가 표준화 되고 정보의 양은 최소화한다. 분산 사회는 구성 요소가 개인으로 치환될 뿐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즉 분산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타인과 공유하는 정보의 절대적 양이 감소한다. 압축되고 정제된 메시지에 감정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결국 공허한 말 잔치가 행동을 대체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가 초래하는 분산 사회가 개인의 삶에는 어떤 충격파를 던지게 될까. 온라인 수업이 일상화된 학교를 상상해보자. 예전에는 성적이 나쁘면 선생님과 부모에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읍소하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말로 때우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말이 아닌 행동, 즉 공부 열심히 하는 행동 이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직장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예전에는 실적이 나쁘면 상사에게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위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당신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다. 말이 아닌 행동과 감정이 배제된 정량 지표로 증명해야 한다. 결국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다. 말은 말일 뿐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직원이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풍경이 어색해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거의 모든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사실 분산 사회도 컴퓨터나 통신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진작에 구현 가능했다. 단지 ‘비인간적’이라는 대중의 심리적 저항이 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었을 뿐이다. 결국 코로나 팬데믹이 대중의 심리적 저항을 깨뜨리면서 ‘말로 천냥 빚을 갚는’ 시대를 종식 시킨 것이다.

당신은 다가올 시대가 비인간적이고 두렵다고 말할 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가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말로 때운다고 그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말로 때우던 그 시간에 누군가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해야 했다. 당신이 세치 혀로 그들의 공과를 가로챘을 때에도 그들은 묵묵히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제 당신의 시간은 가고 그들의 시간이 온 것 뿐이다. 억울해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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