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사람 그리고 법률]주희는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이성기 기자I 2019.11.02 08:25:00

이혼 후 상대가 면접교섭의무 이행 않는다면
`감치` 가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은 계류 중
법원에 면접교섭 이행 명령 신청 현실적

종합경제일간지 이데일리는 ‘Law & Life’ 후속으로 ‘삶, 사람 그리고 법률’이란 주말 연재물을 신설합니다. 국내 주요 로펌 소속 변호사들이 유용한 법률 상식이나 일상 속에서 느낀 잔잔한 감동을 솔직 담백하게 독자들과 나눌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법무법인(유) 지평 마상미 변호사] “주희는 일년 전 이맘때 이혼했다. 여섯 살짜리 아이의 양육권은 전 남편에게 갔다. 전 남편과 그의 가족은 약속을 어기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아 주희는 가정법원에 면접교섭 이행명령을 신청한 상태였다. 시청역 근처 우동집에 앉아서 주희는 그 이야기를 천천히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다시 보고야 말 거라고 이야기하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 얼굴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윤희는 물만 들이켰다.”(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82쪽, 문학동네)

최은영 작가님의 단편소설 모음집 `내게 무해한 사람`에 수록된 단편 `지나가는 밤`은 자매인 윤희와 주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희가 왜 이혼했는지, 왜 아이의 양육권이 전 남편에게도 갔는지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주희의 경제적 형편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이혼 소송은 당사자에게 매우 힘들다. 함께 사는 것이 고통스러워 소송까지 하면서 이혼을 하는 것인데, 그 고통의 시간을 복기하게 하고, 때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그렇게 힘들게 이혼 소송을 하고 나서도 어린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다시 다툼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 중 가장 곤란한 것이 주희 사례처럼 상대방이 면접교섭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이다. 판결문에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얼마 동안 면접교섭을 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기재되어 있는데도,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면접교섭 날이 되어 집 앞에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해도 `돌아가라, 보여줄 수 없다`고 하여 울면서 돌아간 엄마가 있었다. 소설 속 주희도 아이를 보여달라고 시가에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모진 소리를 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대방이 면접교섭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가정법원에 면접교섭 이행 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면 가정법원은 `면접교섭을 이행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으면, 가정법원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여주지 않으면, 일단 달리 방법이 없다. 인터넷에서 `감치`(일정기간 구금하는 것)도 가능한 것처럼 소개되어 있는 경우를 보았는데, 현행 가사소송법 규정상 감치는 불가능하다.

2017년 6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이 과태료 부과 제재를 받고도 30일 이내에 정당한 이유 없이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30일 이내에서 감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가사소송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계류 중이고, 양육자를 감치하는 경우 미성년 자녀의 양육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도 있는 상황이다.

앞서 일단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후의 방법으로 양육자 변경심판 청구를 해볼 수 있다. 그러나 면접교섭권 이행 의무를 불이행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곧바로 양육자 변경의 사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육자 변경은 면접교섭권 불이행에 대한 제재수단이 아니고, 오로지 아이의 복리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에서 양육자로 지정된 A는 남편에게 아이를 보여주지 않다가 아예 일본으로 이주하고는, “일본에 살아서 법원이 정한 대로 따르기 불가능하니 면접 방식과 횟수 등을 바꿔 달라”며 소송을 냈다. 그러자 남편은 “A가 부당하게 면접교섭을 막고 있다”며 친권자와 양육자를 본인으로 변경해 달라고 반소를 제기했다. 법원은 A가 애초에 남편이 아이를 못 만나게 하려는 의도로 일본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면서도 아이의 양육자는 계속 A로 유지했다. 다만 법원은 `A가 계속해서 면접교섭에 비협조적일 경우 이는 아이의 정서안정과 원만한 인격발달을 방해하게 되므로, 추후 남편을 친권자 및 양육자로 지정할 수 있다`고 주의를 주었다.

상대방이 면접교섭의무를 불이행할 경우,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위반 행위 시마다 위약벌을 물리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1일당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이루어진 후, 면접교섭이 이루어진 사례가 있었다.

양육자가 면접교섭에 협조하지 않는 이유는 이혼 과정에서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더욱 증폭된 것이 원인인 경우가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면접교섭권이 아이의 권리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 양육권 소송 중 간혹 `아이를 한 명씩 나누어 양육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윤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실 이 대목을 언급하고 싶어 굳이 최은영 작가님을 소환했다.

“어린 시절은 다른 밀도의 시간 같다고 윤희는 생각했다. 같은 십 년이라고 해도 열 살이 되기까지의 시간은 그 이후 지나게 되는 시간과는 다른 몸을 가졌다고. 어린 시절에 함께 살고 사랑을 나눈 사람과는 그 이후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끝끝내 이어져 있기 마련이었다. 현실적으로 서로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로 살아간다고 할 지라도.”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97쪽, 문학동네)

☞마상미 변호사는

△이화여대 법대 △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지평 소송 그룹 및 건설·부동산팀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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